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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gseop May 29. 2024

도서관 가는 길

파리 2구에 위치한 리슐리외(Richelieu) 국립 도서관


내가 어머니에게 받은 것 중 가장 소중한 선물은 집 앞 30미터에 있는 시립 도서관이었다. 둘째 아이를 막 임신한 순진한 여인이 새 보금자리를 찾아 고집스럽게 발품 팔았던 부동산은 역세권이니 시세차익이니 하는 오늘날의 가치와는 다른 것이었다. 지금의 나보다도 어렸던 그녀는 사람들이 말하는 세상의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 위치한 그 집을 단지 문화적 가능성만을 보고 망설임 없이 비용을 지불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동반인 자격만 있던 시절이 지나고 처음 내 이름으로 함께 만들었던 도서대출회원증을 나는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이 도서관의 오래된 대출기록표에는 내 비밀스러운 성장과정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이제 디지털화된 기록을 이따금 확인할 때면 여권에 찍힌 출입국도장을 보는 것처럼, 그날의 대출과 반납의 여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숲 속처럼 시원한 공기가 순환하고, 돌바닥 표면은 미끄러질 듯 부드럽고, 천장은 하늘만큼 높이 솟아 있던 도서관 로비는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진입로였다. 도서관은 여전히 내가 아는 한 가장 유연한 장소다. 국경도 시간의 흐름도 없는 그곳에서, 누구라도 필요한 것 이상을 찾을 수 있다. 무엇이 필요한지 모를 때에도 그렇다.  


작은 시립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간 꼬맹이는 이제 성인이 되어 파리의 국립 도서관 문을 열고 나온다. 도서관 입구의 마법에 걸린 회전문 때문이 아니다. 그 속에서 우연히 만났던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와 작가주의 영화, 그리고 소규모 아틀리에서 들은 이야기가 프랑스를 향한 열망을 서서히 부추겨 왔던 것이다. 파리에 처음 정착할 때, 나도 어머니 방식을 따라 국립 도서관 근처에 집을 얻었다. 13구에 위치한 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은, 도서관을 우주나 천국에 비교하는 작가들의 말이 결코 비유가 아님을 증명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 중 하나인 이곳은 책의 형태를 본뜬 80미터 높이의 네 개의 탑 아래로 벙커처럼 거대한 공간이 존재한다. 지면 아래로 외부 소음이 완벽히 차단된 내부에 3,600석의 독서공간과 함께 작은 숲 규모의 정원이 있다. 자연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무질서가 그들이 보유한 1,500만 권의 도서에 부여된 질서와 연합하여 마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처럼 무한히 확장하는 세계를 이루고 있다. 파리 4구 퐁피두 센터에 위치한 공공 정보 도서관은 좀 더 환상적이다. 흔히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세계적인 거장의 미술품이나 조각품을, 실물로, 한 건물 안에서 볼 수 있다니 말이다. 


파리의 도서관에서 같은 시간에 스쳐가는 수많은 방문객들을 보면서 여전히 마음이 두근거릴 때가 있다. 프랑스의 많은 예술가들이 이미 이곳을 거쳐 갔듯이, 지금도 일반 방문객 틈바구니 속에 섞여 있을 아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도서관은 소외되고 방황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포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라는 단어를 생생하게 표현하는 이미지를 도서관 밖에서 찾는 것은 나로서는 쉽지 않다. 국적과 연령을 초월한 파리 시민들이 사뿐히 걸으며 소곤거리는 장면들은 모두 연출되지 않은 일상의 예술이다. 혹시 누군가 온 세상이 이미 작은 스크린으로 옮겨왔으니 도서관이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에게 파리 2구에 위치한 또 다른 국립 도서관인 리슐리외 도서관의 주소를 적어줄 것 같다. 17세기 추기경의 거처였다가 1994년 시민들에게 헌정된, 아치형 기둥이 둘러싼 타원형의 요람 같은 도서관이 들려주는 사고의 자유와 사색의 아름다움을 권하면서.



*파리의 한인 주간지 '파리광장'에 연재중인 글입니다.(발행일 202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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