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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gseop May 08. 2024

최연소 정치

프랑스 총리 가브리엘 아탈 Gabrielle CEZARD / SIPA


올해 1월, 프랑스 역사상 가장 젊은 대통령이 가장 젊은 총리를 지명했다. 1989년생인 가브리엘 아탈은 34세의 나이로 총리가 되었으며, 외국계 혈통을 가지고 있고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이다. 그는 마크롱 대통령이 직면한 레임덕 위기를 잠재우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그의 국정 경험 부족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며, 그의 정치적 무기를 살인 미소, 화려한 언변, 현대 미술 지식으로만 표현했다. 그러나 '아탈-리즘'이라는 미사여구 없이도 그의 정치 커리어는 눈부시다. 23세에 보건부 직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아탈은 지역 시의원, 교육부 차관, 정부 대변인을 역임하고 지난해 7월에는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아탈의 정치 경험이 시작된 시점은 이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민 시위를 주도하고 사회당에 입당한 그는 체계적으로 정치적 야망을 키워 왔다. 프랑스 정치계의 평균 연령을 고려했을 때 그를 정치 신동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지만, 그의 '정치적 정신'과 그것에 대한 헌신이 결코 남다른 것은 아니다. '프랑스인다움'이란 무엇보다도 '정치적'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프랑스를 '법국(法國)'이라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2011년 초, 프랑스 공영방송의 한 토크쇼, '여섯 청년의 세계(Un monde six jeunesse)'에 아직 무명이었던 대학생 아탈이 출연했다. 젊은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에 대해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아탈은 "젊은 세대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치와 관계를 맺고 있다"라고 답하며 청년실업을 예로 들어 청년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의 답변에 공감한 다른 다섯 명의 패널들은 그가 미래의 대통령이라며 환호했다. 그 영상을 보며 나는 언젠가 정계의 인사가 되어있을 법한 프랑스 대학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 떠오르지 않는 얼굴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대학시절을 돌이켜 보면, 종종 수업 시작 전에 학생 시위나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캠페인을 위해 시간을 양보해야 했다. 매주 목요일이나 금요일에는 엉성하게 세워진 바리케이드 때문에 수업을 듣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들의 분노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는 내가 이방인 유학생인 탓도 있지만, 그들이 다루는 주제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너무 멀게 느껴진 탓도 있었다. 그들은 거의 모든 상황에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거나 모든 상황을 '정치화' 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들처럼 정치적이지 못하고, 내 목소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한동안 괴로워했다.   


곧 정치는 결국 하나의 의견이고 방향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그것이 반드시 철학적이고 학문적일 필요는 없다. 이 셀 수 없는 갈래의 소리가 서로 부딪히고 섞이면서 공통된 가치와 신념으로 발전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구내식당 혹은 카페 테라스나 공원 어디에서도 쉼 없이 떠들며 매일 그렇게 민주주의를 조금씩 성장시킨다.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대화를 일상 속에서, 그리고 평생에 걸쳐서 하는 것이 바로 정치적인 삶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는 결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나의 다소 비판적인 관찰에 따르면, 아탈 총리는 매우 젊지만 오히려 아주 오래된 사고를 가지고 있다. 얼마 전 "틱톡이 소설을 대체하는 프랑스를 용납할 수 없다"는 말로 시작된 그의 국회 연설 속에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미묘하게 우열을 나누는 어떤 경멸적 태도가 담겨있었다.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56년 만에 교복 의무화를 추진한 것도 그였다. 반면 프랑스 외교관이자 서정시인이었던 스테판 에셀(Stephane Hessel)이 '분노 신드롬'을 통해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일으켰던 책, '분노하라(Indignez-vous!)'를 출판했을 때 그의 나이는 93세였다. 



*파리의 한인 주간지 '파리광장'에 연재중인 글입니다.(발행일 20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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