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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Oct 24. 2022

오늘을 살며

나이 듦에 대하여

나이가 든다는 건 뭘까.

내겐 불편과 무력에 가깝지만, 어르신들에게는 무력 그 이상으로 외롭고 두려운 일 같다.

오늘의 안부가 돌아오지 않는 일 그리고 어떠한 인사도 남기지 못하는 일.


추석 동안 복순이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얼마 전엔 아빠 친구분이 돌아가셨다.

두 개의 이별 모두 갑작스러웠다.

그 같은 소식을 연거푸 마주하며 엄마 아빠도 적잖이 혼란스러우신 듯했다.

이제 우리 나이가 그런 건가 봐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시는 엄마의 목소리가 젖은 낙엽같이 쓸쓸하게 들렸다.

아빠는 며칠 전 아저씨와의 만남을 이야기하며 마냥 꿈같아 하셨다.


복순이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마트에 가신 사이 반신욕을 하시다 돌아가셨다.

엄마와는 추석 때 나누신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요사이 할머니를 통 뵙지 못했단 이야기를 나누신 지 불과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접한 소식이었다.

아빠를 찾아오신 할아버지는 이제야 소식을 전한다며 덤덤히 말씀하셨다. 당신과 가족 모두에게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경황이 없으셨다고 말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에겐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 사실 같았다.

복순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우시던 반려견 시츄의 이름이다.

매일 하루 두 번, 잊지 않고 복순이의 산책을 챙기시던 할아버지가 힘에 부치시게 되면서, 두 분에게 자식 같던 복순이는 양껏 뛰놀 숲이 있는 할아버지 친구분 네로 갔다.

허리 디스크 수술을 여러 차례 반복하신 할머니에게도 산책은 무리였다.

그렇게 되니 오가다 반갑게 인사드리던 두 분을 뵙기가 쉽지 않았다.


허리 수술 전까지만 해도 복순이 할머니는 내가 아는 고령의 할머니 중 가장 고운 어르신이자 총기 넘치는 커리어우먼이셨다. 여든을 넘긴 연세에도 늘 곱게 정장을 차려입으시고 출근을 하셨다.

경영자에서 고문을 훌쩍 넘긴 연세였음에도 한결같으셨다.

어쩌다 퇴근하는 나를 마주하시는 날에는 힘들더라도 커리어를 놓지 말고 잘 쌓아가라 응원해주시곤 했다.


장수하실 줄 알았던 나의 외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낮 동안 안녕하시다가 한밤중 갑작스레.

집에 가고 싶다고, 집에 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바람도 지켜지지 않았다. 마지막 장소가 두 분이 그토록 떠나고 싶어 하던 병원이었단 사실도 두고두고 무겁다.


누군가의 오늘이 내일에 닿지 않고, 오늘의 인사가 작별이 된다.  

비단 젊은 내게도 남의 일만은 아니다.

예고 없는 인사가 내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내일이 당연한 약속이 아니라 생각하니 나의 오늘은 하루도 버릴 게 없게 된다.

최근 누군가의 불성실과 거짓말을 미워하던 중 그 마음 대신 나의 사람들을 더 사랑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미움이 절실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예고 없는 인생에서 그저 사랑과 감사가 답인 것 같은 오늘을 산다.

우리의 이별의 속도가 부디 더디길,

나의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 메인 이미지 출처: 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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