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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Oct 27. 2022

사랑의 단계처럼

커피가 있는 삶

요 며칠 멀티의 작업에 정작 오늘의 요일을 깜박한다거나 전날 주차한 장소에서 오늘의 그레를 찾는 일.

아차, 다시 차로 향하는 길에 기억나는 저녁 간편식. 사무실에 두고 온 저녁은 깔끔히 포기한다.

생각이 많을 때 왕왕 벌어지는 일들에 내가 멀티형 인간이라 믿던 기억은 반으로 접는다.

모니터에 퍼즐처럼 붙은 리마인더 포스트잇 무리들도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와 놓칠까 싶은 불안이 함께다.


그럴 때 나를 이완시켜주는 쉼표가 바로 커피다.

이완을 목적으로 마신다기보다 좋아서 마시면 덤으로 이완도 되는 조금은 다른 뉘앙스다.

줄여야지 하면서도 마음뿐인 이유고, 넘쳐도 덜어내지 못하는 일종의 정당방위.

기댈 수 있는 거리처럼 친밀하고 느리게 즐기는 커피를 좋아한다.

오늘 아침은 속이 아픈 탓에 아로마 세러피처럼 향으로 마셨다. 향에 기대며 근사한 상상을 했다.

한적한 바다 앞 안락한 카페. 카페 문을 여는 순간 후욱 안기는 커피 향과 잔잔한 무드의 음악을 들으며 인상 좋은 사장님이 내려준 핸드드립을 마시는 나를.


핸드드립을 배우던 시간까지 도달하니 우리 사랑은 참 오래되었지 싶다.

잎차에서 커피의 즐거움으로 이동 후 커피 수업은 나를 한결 가깝고도 평온하게 도왔다.

라테 아트가 유희라면, 핸드드립은 일종의 다도 같았기 때문이다.

밀도 높은 집중에 잡념이 사라졌다.

애정을 장전하고 임하니 진심도 깊었다.

지난 일기에서 찾은 설렘을 다시 대하니 정말이지 이건 마치 사랑 같다.

사랑의 단계에서 발단이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 같아
커피와 차를 사랑하는 나는
단계의 예우를 갖추기로 했다.

첫 시간은 커피 이론과 페이퍼 드립 추출.
숨을 가다듬고 카리타에 물을 붓자
이스트를 머금은 빵처럼 커피 가루가
부풀어 오르고
커피 향이 춤추듯 공간을 날아다닌다.
내 기분은 더 좋아진다.

떫은맛을 남긴 나와 달리
언니는 실장님도 극찬한 맛 좋은 커피를
추출해 내어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해 주었다.

몸과 입 안 가득 커피 향이 배어들고
우린 커피 향 나는 여자가 되어 웃고
사진을 찍었다.

2009.3.13 일기 중에서


*메인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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