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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Oct 17. 2022

사랑의 방식

음악, 우리의 긴 사랑

우리는 이뤄질 수 없는 참으로 긴 사랑같다.

어쩌면 이뤄지지 않아 미지인 사랑인지도.


우리 몸에는 노래하는 근육이 있고, 쓰면 쓸수록 근육은 더 발달한다. 노래에 자신이 붙는다.

어릴 적 곧잘 하던 나의 노래는 근육과 함께 퇴화되어버렸다.

근육의 감을 잃어 잘 부르고 싶은 마음만 남았을 때 음악 동아리에 들어갔다.

컴퓨터 음악인 미디(MIDI)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나의 관심사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공연을 하고, 음악을 만들었다.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박사냐 취업이냐 고민하던 와중에도 본능은 옵션을 하나 더 얹었다.

노래 만들고 글 쓰며 사는 자유의 무언가였다.

물론 무관한 길을 걷고 있지만 음악에 대한 동경은 자주 함께 한다.


처음 노래를 만든 건 열 살 때였다.

침대에 누워 놀다가 생각나는 음을 흥얼거렸다.

생각나는 대로 부르는 입말처럼 곡과 가사가 짝을 맞췄다.

기억이 날아갈까 삐뚤빼뚤 그린 손악보가 보물처럼 남았다.


한창 빠져 있을 땐 자주 꿈속에서 흥얼거렸다.

새벽녘 눈을 떴을 때, 입가를 아직 떠나지 않은 음들을 녹음기나 핸드폰에 저장했다.

아침이 밝으면 빛에 증발되듯 기억이 날아가버리기 때문이었다.

그 시기, 내 베개 옆에는 순간을 남기는 소형 녹음기가 항상 함께 했다.

물론 맑은 정신으로 확인하는 나의 음성은 기억을 방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숙원처럼 음원을 완성한 건 대학교 동아리에서였다.

동방 컴퓨터에 깔려있던 케이크워크, 소나 같은 프로그램들로 음을 만들고, 함께 믹싱을 했다.

눈 뜨면 동방으로 직행하기 바빴다.

마음을 감출 길 없이 공중에 늘 발이 떠 있는 기분이었므로.


지금 와 생각하면 내 노래는 싸비 없이 리듬이 되풀이된다.

한동안 동방에서는 친한 오빠들이나 남자 동기들이 천사들의 합창처럼 고갯짓 하며, "따라따라라, 따라따라라"를 따라부르곤 했다.


부캐로 음원을 만들고 래퍼 활동을 하는 회사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기억을 따라가니 향수가 가득하다.

그 시절 프로그램 대개 이제는 구하기 쉬워졌다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작업이 가능하다 말한다.

용기까지 덤으로 받으니 열과 흥이 오르고 있다.

느려도 사랑은 늙지 않으니 한 발 한 발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완벽하진 않아도 그게 내 사랑의 방식이고, 행복의 표현이니까.


★나의 자작곡

너의 기억

모두 다 잊었단 거짓말로도 안 되는 것

끝없이 머무를 너에 대한 내 기억의 집

따라따라라 따라따라라

아득한 시간 그 안에서 되풀이될 온기 너의 흔적


시간이 흘렀단 위안조차 소용없는 것

선명히 자라날 너에 관한 내 기억의 숲

따라따라라 따라따라라

오래된 결말 끝에서도 숨 쉬어갈 비원 너의 자리


모두 다 잊었단 거짓말로도 안 되는 것

아련히 찾아올 너에 대한 내 기억의 길

따라따라라 따라따라라

꿈처럼 눈먼 그 자리에 멈춰버릴 거리 너의 두 손


시간이 흘렀단 위안조차 소용없는 것

쉼 없이 흘러갈 너에 관한 내 기억의 강

사라진 얘기 그 너머로 무던해질 나의 마음속에

오늘도 눈 뜬 너의 기억



*메인 이미지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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