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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Oct 09. 2022

실종된 반달

표정의 안부

반달 눈웃음은 여전한 지..


메일을 읽다 반가운 단어에 전기가 오른다.

나 역시 궁금해 거울을 보며 생각한다.

요즘의 나와 내 표정의 안부에 대해…

무수히 들었던 눈(眼)의 단어들이 사람과 장소를 가리고 가뭄이 든 탓일까.

변화를 스캔하고서야 반달의 실종을 감지한다.


참고로 내 눈은 반달에 눈꼬리가 살짝 내려갔다.

어릴 적 별명과 인상 역시 '눈(眼)'의 비유가 대부분이었다.

반달눈, 갈매기, 강아지, 슬픈 눈, 소피 마르소까지…

기본적으로 '웃는 상'으로 통했고, 대부분 나를 '눈웃음'으로 기억했다.

웃으려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초등학교 때인가 지나가던 동네 아저씨가 친구랑 장난치는 나를 보며 "너는 눈웃음이 있구나"라 했던 기억이 난다. 눈웃음이 뭐냐는 친구의 질문에 아저씨는 쉽고 친절히 설명해주셨다.

웃을 때 눈부터 웃는 거란다

그때 알았다.

내가 웃을 때, 눈부터 웃는다는 것을.


중학교 동아리 캠프에서는 짝꿍과 서로 닉네임을 지어주는 시간이 있었다.

내 짝은 마르고 키가 큰 1학년 후배였다.  

가만히 나를 응시하던 그 애는

음.. 누나 눈은 뭔가 슬퍼 보여요, 슬픈 눈

난 조금도 슬프지 않았지만 그렇게 '슬픈 눈'이 되었다.  

캠프 이후에도 그 애는 나를 볼 때면 '슬픈 눈 누나!'라고 큰 소리로 부르며 달려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귀는 참을 수 없이 붉게 달아올랐다.


길을 다닐 때, "인상이 선해 보이시네요."라고 운을 뗀 낯선 사람이 도를 아냐며 불편하게 따라붙을 때도 생각했다. 나의 눈매 때문일 거라고...    


딱히 이렇다 할 사춘기 없던 내가 익숙한 그 말들에 괜한 반발이 일던 때가 있었다.

집에 오면 교복 그대로 거울 앞에 앉아 손으로 눈꼬리를 45도 추켜올리고 중얼거렸다.

고양이가 돼라, 고양이처럼 돼라

물론 강아지가 고양이가 될 순 없었지만 노력은 가상히도 오래갔다.

그저 조금 강하고, 더러 무서워 보이고 싶은 마음도.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 무색하게 나의 반달은 사회 안에서 알아서 퇴화되었다.

멍뭉미 가득한 웃음 역시 내가 좋아하는 이들만이 아는 표정이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진다는 말처럼, 이 변화 역시 나의 책임이겠지 하니 조금은 복잡해진다. 반면, 어릴 적이 더 행복했다면 일상의 웃음이 매일의 행복을 거들고 있던 게 아닐까 짐작해보는 거다.

의식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한 순간처럼.

그 순간을 다시금 챙겨보며 진실 하나를 마주한다.

아이라이너의 도움으로 반(半) 고양이로 살아가지만, 사실 난 천성적으로 멍뭉미가 넘치고, 강아지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골수팬인 것이라는 걸.  


#오늘의 추천 BGM

※ Kirakuni(편안하게) M/V by Kirakuni (출처: J. George's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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