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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Sep 23. 2022

자연의 정서

겸허한 식탁

You are what you eat

전적으로 애정하는 이 사실과 나 사이에는 미세한 모순의 거리가 있다.

잘 알지만 지속은 어려운, 절대적으로 지지하지만 지키지 못하는 평행의 관계.  

그러다 보니 나의 지난한 매크로비오틱(Macrobiotic)은 정결보단 자숙의 레시피에 가깝다.

빵을 입에 물고 좋아하다 채소로 속죄하는 식이다.


‘크다'는 의미의 매크로(Macro)와 '생명'을 뜻하는 바이오(Bio), '방법'(tic)의 합성어인 매크로비오틱은 고대 그리스의 장수하는 사람인 ‘매크로비오스(Macrobios)'에서 유래했다. 소위 장수의 비결을 식생활에 두고, 몸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의 성질을 융합하는 방식이다.


이를 조리에 접목해 자연식 레시피로 대중화한 시작은 일본을 통해서다.

제철 뿌리채소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히 사용하는 방식으로 음양의 균형을 맞춘다. 자연의 기운을 받는 셈이다.

예로, 여름 채소인 오이와 더운 성질의 마늘을 함께 조리하면, 음양이 조화로운 중용의 상태가 되는데, 매크로비오틱에서 말하는 이상적 상태다.

무엇보다 재료 본연의 쓰임이 다하도록 조리하므로 과정과 결과에 버려지는 것이 없다.

지속 가능한 식탁의 원천이기도 하다.


오래전 겨울, 수업에서 처음 만난 매크로바이오틱은 차분하고 신선했다. 또 하나의 세상 같았다.

우리의 몸과 지구를 모두 지키는 원대함은 둘째치고 내 하루의 끝을 평온하게 감싸주었다.

선생님의 시연은 자연에 대한 예우처럼 화려한 수식없이도 깊고 담백하게 빛났다.

사찰에서 구해오신다는 간장과 된장, 제철의 착한 식재료가 과잉의 양념 없이도 선생님의 손끝에서 뚝딱 완성되고, 자연의 성질과 내 몸의 균형을 가깝게 이해하게 되었다.

뜨거운 볕을 견디는 찬 성분의 여름 채소들과 그 반대의 겨울 채소들이 갖는 제철의 이로움을 지켜야 한다고 말이다.

매크로비오틱 수업 후 맛있는 겨울 식탁. 우엉, 무, 당근과 겨울 해초 톳이 주 재료.

잘 알면서도 한동안 입에 단 것들의 유혹, 특히 면과 빵을 뿌리치지 못하고 즐기며 몸이 붓고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어글리어스의 채소들을 쪄 간장 소스와 곁들이며 속을 달래고, 반찬을 만들었다.

미나리 무생채, 소고기 오이 볶음, 가지 버섯볶음 등 반찬 만드는 재미가 붙고, 가을 채소인 다양한 종류의 버섯을 만나는 자체로 평화로웠다.


시간의 역행도, 자연의 버림도 없는 매크로비오틱은 모두가 때와 쓸모를 갖고 태어나듯 자연에도 같은 기다림과 의미를 부여해주고 있다.

자연 아래 겸허한 마음을 선물하듯 말이다.


그럼에도 앞으로의 나는 여전히 세상의 음식들에 항복하고 자숙하겠지만 자연의 귀한 마음만은 어디 가지 않으리라 내 안에 살포시 안아보는 것이다.


#오늘의 추천 BGM

Au Coin Du Monde (Streets Go Down) by Keren ann (출처: emimusic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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