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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Oct 05. 2022

성장의 퍼즐

[영화#7.] <마이 걸>

<마이 걸>(1991)은 베이다의 사랑스러움이 과즙처럼 배인 영화다.

엄마의 죽음으로 시작된 외로움이 죽음을 두렵게 해도 절망으로 밀려가지 않는다.

두려움을 대신해 사랑을 채워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 기억의 베이다는 마음속 그늘을 입 밖의 단어로 삼지 않았다.

그저 아파하거나 환기시키며, 결국은 견뎌 낼 뿐.  

그래서 더 짠하고 언제나 사랑스러웠다.


엄마의 죽음과 맞바꾼 태생에 '엄마'는 상처의 단어처럼 어렵고, 상실의 그리움도 나누기 힘들다.

그런 베이다가 1인칭으로 이겨낸 진짜 죽음은 유일한 친구이자 단짝인 토마스와의 이별이었다.

베이다의 인근에 함께 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단짝의 죽음으로 현실이 되었을 때 베이다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

용기를 내어 마지막 인사에 나선 베이다가 관 속에 누운 토마스를 회상하며 오열하는 장면은 다시 보아도 눈물이 났다.

외롭고 감정에 솔직하나, 자신의 슬픔에는 무딘 소녀, 그렇기에 씩씩하고도 사랑스러워 슬픈 나의 소녀다.

그럼에도 자신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착각에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고(의사 선생님의 판정을 오진이라 늘 불신하는), 메이크업을 받은 어느 날 꾸러기를 지우고 모델의 워킹으로 등장하거나, 시는 몰라도 국어 선생님을 향한 마음이 작가의 꿈을 만드는 여러 잔상이 성장의 퍼즐처럼 함께 한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마이걸>은 베이다가 빚어가는 여러 모양의 우정이 보인다.

단짝 토마스와의 또래 간 우정을 포함해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와의 우정, 새엄마가 되어가는 셸리와의 좌충우돌 우정, 연정의 대상인 국어 선생님과의 우정까지 나이와 관계를 넘나드는 광범위한 우정이 등장한다. 모든 관계 속에서 베이다의 마음이 단단하게 자란다.

나 역시 응원의 마음으로 영화 속 베이다를 지켜보았다.


<마이 걸>을 다시 찾아보게 된 건 얼마 전 시네아이코닉(@cineiconic)에서 만난 스틸 컷 때문이었다.

마이걸의 스틸 컷을 만나자 베이다가 너무 보고 싶었다.

정확히는 어린 시절 내가 만난 베이다가 말이다.

더욱이 메이크업을 받고 모델의 워킹을 하던 베이다의 모습은 내가 사랑하는 장면 중 하나였다.  


어른이 되었어도 베이다는 여전히 사랑스러웠고, 마이걸은 예전 그대로 따뜻했다.  

베이다: 천국은 다들 백마를 갖고 있고
           온종일 백마를 타며
           마시멜로를 먹을 거야
           서로서로 친한 친구로 지낼 거고
           스포츠를 할 때는 팀이 없어
           꼴찌 할 일도 없지
 
토마스: 그런데 너 말 타는 거 무서워하잖아

베이다: 상관없어. 보통 말이 아니니까
           날개가 달렸거든
           떨어져도 상관 없어.구름 위일 테니까  

토마스와의 대화 중 엄마가 사는 천국을 말하는 베이다의 묘사가 순수하고 아름답다.

베이다에게 천국은 그런 곳이고, 세상도 그와 같길 바라니 말이다.  

토마스가 찾아준 반지를 건네는 토마스 엄마에게 천국의 엄마가 토마스를 잘 돌보아줄 거라 전하는 베이그의 위로가 미덥고 그래서 더 짠한 순간이었다.

토마스를 그리며 자작시를 낭송하는 베이다 & 새로운 단짝 쥬디와 자전거를 타는 원피스 차림의 베이다


베이다는 스스로, 또 함께 사랑과 우정, 죽음 모든 것을 이겨냈다.

토마스가 떠나고, 새로운 단짝이자 동성 친구인 쥬디와 함께 하며 바지가 아닌 원피스 차림을 한 베이다.

영화 후반부에 한 단계의 성숙처럼 상아색 원피스 차림으로 자작시를 낭송하던 모습도 고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저녁 먹으러 집에 가야 한다는 토마스에게

저녁 시간? 강아지야? 밥 먹으러 집에 가게

라고 핀잔을 던지던 베이다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다른 어디선가 힘차게 페달질을 하며 달려오는 함박웃음의 베이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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