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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Nov 07. 2022

잠의 과학

수면 예찬

우리의 일상을
일과 휴식의 순환으로 규정한다면,
우리의 삶은 고된 노동과 의도적인 휴식에 의해 발전하며,
최고의 잠은
활발한 렘수면과 정적이고 느린 파동의
수면이 적절히 섞였을 때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5단계의 수면에서 뇌는
성장, 치유, 기억 통합 등의 활동을 하며
꿈도 꾸게 한다.  

- <일만 하지 않습니다 (알렉스 수정 김 방, 한국경제신문)> 중에서


연구에 따르면, 잠은 뇌의 물리적 건강을 유지하고 새로운 뇌 세포들의 성장을 돕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억을 정리하고 합하며, 새로운 기술을 학습하고, 경험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데 필수적이다.
때론 새로운 통찰력을 주거나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수면 예찬에 가까운 이론들은 눈빛이 통하는 애정의 과학이다.  

나는 본래 잠이 많고, 심지어 잠을 좋아한다.

삶의 질에서 수면이 차지하는 비율도 큰 편이다.

심지어 여행을 가거나 MT에 가서도 밤을 꼬박 새운 기억이 없다. 씻고 꼭 잠에 들었다.

그저 잠이 좋아서 그랬다면, 반대로 회복을 위한 불가항력의 잠도 있다.   

기질적으로 쉬이 피로해지는 나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면역이 떨어지면 기습적으로 잠이 쏟아진다.

정신을 잃듯 긴 잠에서 깨어나면 신호를 받듯 그제야 전원이 깜박거렸다.  


나의 많은 잠의 형태 중 곤란한 잠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있던 잠도 줄이는 마당에 본능에 충실한 나의 수면은 내리 절정을 찍곤 했다.

간식을 가지고 오신 엄마가 책상에 곤히 엎드려 자는 내 머리와 마주하는 일이 일상과도 같았다.

문만 열면 열의 여덟은 자고 있으니 '우리 딸 검은 머리칼만 보였다'라고 웃픈 농담을 하시곤 했는데,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속이 탈 노릇이다.

한 번은 책상에 놓고 가신 과일 화채에 머리카락이 닿은 지 모르고 잠에 들었다가 단물에 빳빳하게 절여진 머리칼을 엄마와 함께 마주한 날도 있다.

그래도 남은 양심에 책장 뒤에 ㄴ자로 숨어 자는 날도 있었는데, 그저 모른 척해주신 것뿐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엄마는 편히 자고 일어나 맑은 정신에 하라 권하셨는데, 침대에 누운 내가 종국에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엄마는 나를 깨우다가 포기하고 돌아가셨고, 나는 태평히 단 꿈을 꾸며 맛있게 잠을 즐겼다.  


자연히 시험기간이 닥치면, 벼락치기가 빛을 발했는데, 그렇다고 밤을 새우 지도 않았다.   

때는 중2 기말고사 시즌.

밤을 새웠다는 친구가 멋져 보였던 나는 그 애의 기분을 알고 싶었다.

순전히 호기심에 시험을 하루 앞두고, 밤을 새웠다.

솔직히 책에 집중하기보다는 가는 시간에 더 집중을 했다. 다섯 시 알람이 울리자 엔도르핀이 급속도로 고조되며 성취감이 북받쳐 올랐는데, 갑자기 따뜻한 무언가가 입술을 적셨다. 코피였다.

난생처음 만난 일거양득의 자랑에 도저히 참을 수 없던 나는 달려가 안방 문을 열고 소리쳤다.

엄마 아빠, 나 밤새웠어! 그리고 나 코피 나!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신 채 두 분은 철없는 나를 꼬옥 안아주셨다.


잠에 숱하게 굴복한 이력에 반해 성적이 나쁘진 않았던 나의 행운도 감사할 일이다.

동생은 그런 나를 신기해했는데, 물론 나도 내가 신기했다.

잠에 대한 사랑을 굳이 합리화할 생각은 없지만, 신경학자 사라 메드닉은 꿈을 꾸기에 적당한 한 시간 정도의 낮잠이 기억력과 지각 능력을 향상한다는 사실을, 휴고 스피어스와 프레야 올라프스도티스의 연구팀은 낮잠과 인지 능력 사이의 관계를 밝힌 바 있다.

나의 빈번하고 웃픈 잠들 역시 알게 모르게 나의 기억을 돕고 있던 게 아닐까.  


지금도 엄마는 잠을 이기지 못하던 내가 약하게 태어난 때문이라 말씀하시지만 이유를 불문하고 그저 난 선천성 잠만보 인지도 모른다.

수면 예찬론자로서 내게 수면은 그때도 지금도 사랑이고 과학이다.


★ 오늘의 추천 BGM

Ylang Ylang (출처: FKJ Youtube)


*메인 이미지 출처: 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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