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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Mar 21. 2022

그 음악을 들려줘요

너만을 위한 노래

전화에 무던한 편이라 정작 연락은 마음으로 하고 산다. 다만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근래에는 본의 아니게 미안한 일도 생긴다.

알고 보면 코로나가 한바탕 지나간 친구부터 격리 말미인 친구까지 내가 뒷북을 치는 일이다.


SNS가 활발하던 친구가 뜸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가격리 중이라는 친구의 목소리가 잠겨있다. 그렇잖아도 내가 전에 구워준 CD를 듣고 있었다며 "통했네" 한다.

커버에 그림 그려준 거 기억나냐는 친구 말에 기억 속 점 같은 나의 그림들이 '엄마~' 하며 달려온다.




하루 종일 노래를 달고 살던 시기에 함께 나누고 싶은 곡들을 큐레이팅 해 선물했었다.

CD마다 콘셉트가 있었는데, 일종의 맞춤식 선곡이었다. 예외적으로 ‘오늘은 무지개'는 맞춤이 아닌 내 중심의 선곡으로 장르에 오픈마인드인 친구들용이었다. ‘락, 애시드 재즈, 힙합, 트립합, 보사노바, 가요, 하우스'처럼 랜덤으로 7개씩 장르를 묶은 혼합 버전이었다. 강약중간약이 롤러코스터처럼 반복된다.

마지막은 화룡점정으로 라벨지 커버에 직접 그림을 그렸다. 작고 둥근 지면에 고만고만한 그림들이 점처럼 놓여 있었다. 심지어 동일한 그림이래도 불안정한 실력답게 완성도는 복불복이었다.  



사실 그림에 대해 말하자면 할 말이 많은데, 도록을 소장하고 전시회는 챙겨 다닐 정도로 그림 보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잘 보는 것과 잘하는 것은 엄연히 별개다.

무수한 간접 경험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드로잉 실력 같다. 내가 갖지 못한 재능인 동시에 결핍만큼 부러워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치 짝사랑 같다.

소망과 달리 난 어릴 적부터 그다지 소질은 없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수묵화로 난을 치는데, 종국에 난은 온데간데없고, 화선지 가득 까만 네모만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꼬박 한 시간을 덧칠했으니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과유불급의 참 예시이자 화선지의 참극이랄까.

그림을 둘러보시는 선생님이 제발 내 자리는 오시지 않길 바랐지만, 결국 그분은 충격이 가시지 않는 얼굴로 나와 죄 없는 화선지를 번갈아 보시며 5초간 부동자세를 유지하셨다.

보통은 아이들 그림에 몇 번의 붓 터치로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시는 분이셨는데, 선생님은 내 그림에 사망선고를 내리시고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음.. 네가 나중에 그림 그려서
돈 벌어먹고 산다고 하면
너를 위해 내가 따라가 뜯어 말릴 거야


내가 봐도 내가 너무 했으므로 난 항복의 의미로 배시시 웃었다.

"네, 선생님 말씀이 맞는 거 같아요오..”

그 해 미술 성적은 기분 나쁘게 안 좋았다. 그래도 나는 선생님도 미술도 계속 좋았다.


초등학교 때는 학년 대표로 사생대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풍경을 그리는 자유 주제를 받고 도시락 먹으며 잔디밭에서 풍경만 실컷 보다 온 기억도 있다. 지금도 학교에서 왜 나를 내보냈는 지 미스터리다.

어쨌든 확실한 건 보는 것과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다르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난 CD 커버에 작가의 마음으로 혼을 담았다.  

커버가 없는 앨범은 팥소 없는 찐빵이니까.



소중한 내 친구가 추억의 CD와 즐겁다니 나도 안 들어볼 수가 없다.

비록 우린 지금 서로의 공간은 달라도 '함께'인 기분이다.

음악이란 그런 것이다.

Dry your eyes by 3rd Storee
Jackie by Bossa nostra (출처: Bossa Nostra-주제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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