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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May 09. 2023

노래가 혈관을 타고 흐를 때

[음악 #4.] 샴푸의 요정

삶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것이다.

사랑하는 곡은 시작과 함께 몸이 먼저 반응한다.  

가끔은 노래가 혈관을 타고 흘러 내 안에 무지개가 피는 상상도 한다.

교통은 막혀도 퇴근길 나를 그리 만드는 힘 역시 차 안의 음악이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더 좋다.

음악이 곧 아지트가 되어 시공을 벗어나고, 마음은 버선발로 마중 나간 지 오래다.


순애보로 사랑하는 곡 중 무적의 리메이크가 여럿 되는데, 그중 백미는 빛과 소금의 '샴푸의 요정'이다.

원곡인 '사랑과 평화' 버전과 흐름을 같이 하지만, 덜 정제되고 오랜 아름다움이 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장미 한 송이를 건네는 장발의 로커가 떠오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빛과 소금'의 리메이크는 기교 면에서 좀 더 섬세한 맵시가 난다.

나 역시 <빛과 소금>으로 샴푸의 요정을 처음 만났기에 이 곡이 원곡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멀리서도 알아보게 되는 운명 같은 느낌이었다.

샴푸의 요정이 왜 이리 특별한 지 기억해 보면 이렇다 할 사연은 없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었던 곡이 첫사랑처럼 선연하게 내게 와 안긴 기억뿐이다.

첫눈에 반한 호감은 사그라들지 않고 여전히 청량하게 이어진다. 뚜껑을 갓 열었을 때 꽃처럼 오소소 일어나는 탄산에 가깝다.

전주의 멜로디가 시작되는 순간, 삐삐의 요술봉이 만든 4차원 세계로 안내를 받는다.

좋아하는 만화경 속 세상처럼 빙글빙글 빠져들고 깊이 스며든다.

4차원 세계로 흘러가는 폴과 친구들 by 이상한 나라의 폴

가장 좋아하는 구간은 마성의 가성이 돋보이는   

그녀만 보면 외롭지 않아
슬픈 마음도 멀리 사라져

이제는 너를 사랑할 거야 하아아 - 번지는 구간은 아지랑이가 일다 사라지듯 아득해진다.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후렴구의 맵시 나는 신시사이저 멜로디는 대마왕 손아귀에서 마침내 미나를 구해내고, 폴과 미나가 행복의 왈츠를 추는 듯한 해피엔딩이다.

이렇듯 내게 ‘샴푸의 요정’은 노래 이상으로 완벽에 가까운 짜임이다.

들을수록 행복이 자꾸 묻어난다.

나의 혈관을 타고 노래가 흐른다
곧 피어날 무지개처럼.


#대문 이미지 출처: 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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