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삼키는 위로처럼
관계에 있어 종교와 정치는 주제로 삼지 않는 대화 중 하나다.
고유와 자유의 것들이 시비로 번지는 게 불편해서다.
상대에게 먼저 묻는 일도 굳이 나의 종교를 밝히는 일도 없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의 자리는 분명 있다.
그것은 생각하면 마음이 안기듯 온기가 도는 것이기도 했다.
신부님의 선종을 얼마 전 우연히 접하고,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믿기지 않았고, 너무 늦게 알게 된 사실에 죄송했다.
신부님에 대한 기억을 따라 시간은 나를 멀리 데리고 갔다.
나의 애착에 비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곳이었다.
나를 예뻐해 주시던 원장 수녀님은 내가 대학교에 들어가자 엄마에게 나를 수녀로 키울 생각이 없는지 물으셨다. 그간 엄마를 따라 조용히 미사만 오가던 나를 오래 지켜봐 오신 터였다.
이후 나를 만날 때면 수녀님은 내 손을 꼭 잡으시며 당신의 생각을 들려주시곤 했다.
연애는 몰라도 사랑은 하고 싶던 스무 살의 나는 멀리서 수녀님이 보이면 도망 다니기 바빴는데, 싫다는 내색은 차마 못하고 택한 마음이 주일학교 교사였다.
성서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내가 사실 누구를 가르칠 입장은 못되었다. 그저 어린 친구들에게 자신 있게 사랑을 줄 수 있는 마음이 전부였다.
보좌 신부님은 막내에 아기 교사인 나를 특히 예뻐해 주셨는데, 한 번은 신부님의 초대로 언니 오빠들과 사제실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우리의 눈은 일제히 한편에 자리하고 있던 파이프오르간을 향해 갔고, 신부님께 연주를 조르기 시작했다. 부끄러워하시던 신부님은 나를 보시더니 "막내가 이야기하니 안 들어줄 수가 없네" 하며 즉석에서 연주를 들려주셨다.
이후 대학원 시절 다른 본당에 계신 신부님을 뵈러 간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보통 그러한 인사에 살뜰하지 못한 내가 마음으로 한 유일한 걸음이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신부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너무 이른 영면에 먹먹한 마음이 되어 화살기도를 올렸다.
가끔씩 오르간을 쳐주시던, 눈이 마주치면 빙긋 웃어주시던 신부님이 스쳐갔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용감하게 적응할 수 있던 것도, 그 시절 친절했던 기억 모두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다시 만날 수 없는 그리움도 있다는 사실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우리를 보고 계시다는 마음이 들었다.
올려다본 하늘에 성당 마당에서 아이들이 타고 온 씽씽이를 해맑게 타시던 신부님이 보였다. 그뒤에서 철없는 다 큰 아들을 보듯 혀를 끌끌 차시던 주임 신부님의 모습도 함께.
나는 나도 모르게 하늘을 보며, 또 한 번의 기도를 했다.
하늘에 안부를 묻고, 그리움을 묻었다.
슬픔을 삼키는 위로처럼 소리없는 기도가 나를 채우고 있었다.
★ 오늘의 추천 BGM
자주 따라 부르는 사랑하는 리메이크 곡. 원곡은 윤상의 ‘이별의 그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