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갑각류처럼
치비에서 어엿하게 자란 새우가 알을 품었다.
알의 색깔로 보아 오래되진 않은 듯하다.
녀석은 끊임없이 섀도복싱을 하며 알에 산소를 불어넣는다. 전보다 의욕적으로 밥을 먹는 모습에도 모든 모성애는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수많은 탈피를 거쳐 지금의 포란까지 그녀의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있다.
새우에게 성장은 거듭 만나야 하는 고통의 반복이다.
단순히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무방비 상태에서 탈피의 시간을 오롯이 견뎌야 한다.
갑각류가 성장하는 순간은 최고로 약해진 순간이라고 하던 장동선 교수의 말처럼 껍질을 벗은 맨몸의 새우는 가장 유약한 존재로 세계에 놓인다.
탈피 중인 혹은 직후의 새우는 미세한 움직임에도 몸이 부서져 죽기 쉽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살짝 스치거나 물살의 움직임에도 마찬가지다.
성장과 동시에 너무도 쉽게 죽음을 맞는 아이러니와 같다.
그는 이 순간을 인간의 마음에 비유했었다.
상처받지 않는 단단한 마음의 껍질도 좋지만 인간이 진정으로 성장하는 순간은 죽을 것 같고 상처받을 것 같은 순간들이라고, 바로 그때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럼에는 우리는 상처받길 두려워한다.
상처받는 순간도 순간이지만 사후의 자국이 더 아픈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닝글로리>의 문동은이 짜릿한 복수로 승리했어도 복원되지 않을 뿐 상처는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겪지 않아도 될 불행이었고, 처음부터 만나지 않는 게 아름다웠다.
그럼에도 그녀는 허물을 벗고, 인과응보처럼 스마트하고 멋진 어른이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성장의 순간은 곧 내가 가장 약해지는 때다.
그 시간 끝에 한 뼘 더 자란 우리가 기다리고 있다.
말하자면 길지만, 새드엔딩이었던 새우 양육은 작년 8월부로 재개되었다.
회사 지인이 새로 분양해 준 체리새우 세 마리로 다시 용기를 내었고, 이번엔 좀 더 각별히 신경을 써 구피와 분리해 새우만을 위한 어항을 관리했다.
주기적인 탈피 과정을 방해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지금은 새로 태어난 새끼들이 청년이 되어 어항은 삼십 마리에 육박하며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현재 구피와 안시숏핀의 집, 새우와 구피 치어의 집 이렇게 두 개의 어항을 관리하고 있다.
다만, 물의 세계는 들리지 않아 이십사 시간 지켜보지 않는 한 간밤의 일을 알 길은 없다.
물이 깨지지 않도록 환수에 신경을 쓰고 밥을 잘 주어도 가끔을 이유 모를 일들과 마주한다.
성체 새우 세 마리 중 한 마리가 밤 사이 출산과 함께 실종되었는데, 흡사 증발과도 같았다.
왕성한 탈피를 거듭하며 몸집과 활동을 자랑하던 녀석이었다.
꼬물거리는 치비 일곱 마리와 맞바꾼 삶처럼 녀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는 말을 뒤집듯 이 역시 물의 미스터리로 남았다.
물의 세계는 불가항력이래도 새우의 성장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제 스스로 탈피의 흔적을 남기며 성장해가고 있다.
물 밖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을 지켜보고 남기는 지지와 응원이다.
생명이 생명을 품는 일은 여전히 아름답고, 과거의 새드엔딩은 이렇듯 해피엔딩이 되어간다.
엄마가 된 우리 새우를 응원한다.
#대문 사진 출처: Pix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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