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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Jul 07. 2023

회고의 눈동자

[영화 #10.] <어나더라운드>

영화 <어나더라운드>에서 술은 망각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준다.

굳은살 같던 일상에 활력을 심어준다.

하지만 유쾌한 마법이란 어디까지나 선을 넘기 전의 이야기다.  


흥건히 술에 젖은 청춘 사이로 영화는 다음의 문구를 던지며 시작한다.


청춘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꿈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꿈의 내용이다.
 by 키에르케고르


'청춘, 사랑'. 모두 살아있는 것들이다. 정확히는 살아있다고 믿게 하는 실체다.

그리고 '꿈'은 언젠가 깨기 마련이다.


생일을 맞아 모인 중년의 친구들은 알코올을 가설로 일탈을 모의한다.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0.05% 농도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것.

술이 주는 용기는 꿈이자 권태로부터의 해방이다.


학교와 집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역사 교사 마르틴. 무기력한 그의 일상은 점멸 중이다.

반려견과 단출히 살아가는 체육 교사 톰뮈. 가족의 공백은 고독이 대신한 지 오래.

음악 교사 페테르와 육아와 전쟁 중인 심리학 교사 니콜라이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일탈에 술과 우정이 가세하며, 행보는 더욱 과감해진다. 취기에 활력과 자신감이 넘치고, 청춘이 돌아온 기분마저 든다.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용기를 나눠주는 활기찬 다정함도 보인다.


실험의 종국은 해피엔딩의 청춘을 주었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밑져야 본전인 심산으로 시작한 실험은 겁 없는 취기에 수위를 높여가고, 도전은 결국 파행을 낳는다. 해고에 설상가상, 알코올이 증발해 버린 고독을 이기지 못한 톰뮈는 자살을 택한다.

흥의 장단에 손뼉은 맞추어도 중독에는 답을 주지 않는 술이었다.


영화 속 술은 인생을 돌아볼 회고의 눈동자를 준다.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 보게 돕는다.

사랑과 그리움에 인색하지 않은 솔직한 사람이 되어간다.

인생의 얼굴을 하고 있는 술을 우리가 놓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술과 우리 사이에는 건강하게 적당한 거리가 필요할 뿐이다.

술은 결코 어떠한 답이나 비결을 갖고 있지 않다. 더욱이 인생을 책임지지도 않는다.

선을 지킬 때 술도 사람도 좋은 친구로 남는다.


떠난 친구를 추억하며 함께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마지막 장면은 자유롭고 아름답다.

친구를 잃었어도 누구보다 환히 웃으며 고인의 길을 축복하듯 춤을 추는 그들에게 알코올은 더 이상 주객을 전도하던 옛날의 그것이 아니다.

뜨거운 자유를 쥐고 오늘을 살아가는 서사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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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a life 출처: studiocanaIUK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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