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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Aug 23. 2023

In other words, I love you

나의 제주, 나의 바다

처서가 왔지만 여전한 더위에 절기는 무시 못한다는 옛말은 무색해졌다.

어쩌면 이건 올 한 해만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기후 변화를 따라 절기 매직은 자취를 감춰버릴 지도.  

서랍 속 기억을 꺼내듯 올여름의 제주를 그려본다.


물을 좋아하지만 모든 바다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바다하고도 해가 비추는 썰물의 제주를 특히 좋아한다.

속이 말갛게 비치는 썰물의 바다는 어렵지 않은 거리의 친구 같다.

친구 하기 좋은 깊이의 바다.

종아리 깊이의 물속에서 물결에 아른거리는 모래를 간지럽게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제주에 갈 때면 지역 별 물때를 기록하는 일부터 챙긴다.

 

한풀 꺾인 더위에 수온은 친절해진 가을의 제주를 주로 찾아왔다.

하염없이 숲을 걷기도 안성맞춤인 계절.

이번에 찾은 제주는 장마와 더위를 오가던 한여름이었다.

흐린 얼굴도 사랑하지만 맑은 날의 바다가 예쁜 건 어쩔 수 없는 법.

돌아오는 날을 제외하곤 장대비와 소나기 사이를 오가야 했지만 그래도 모든 게 좋았다.  

비를 맞으며 숲을 걷는 맛은 오감 가득 달콤했다.


사진으로 남은 천연색 바다를 보며 천연의 기쁨에 취한다.

바다의 계절은 한 템포 느리게 오는 법이니 바다의 눈으로 본다면, 내가 만난 건 봄.

찌는 듯한 햇볕에도 물속은 봄이었다.

이제 육지의 가을을 따라 바다에는 여름이 올 것이다.

바다의 계절을 따라 물놀이가 적격일 시기는 사실 이제부터다.


다시 제주에 가고 싶다.

어쩌면 단순히 그 말이 하고 싶은 건지도.

아니면, 사랑한다는.


사랑하는 바다와 나는 서로 다른 계절에 서 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사이에 두고, 다른 계절의 서로를 바라본다.

지나간 계절을 그리워하듯 우리는 무언가 통할 것만 같다.



※대문 이미지: 곽지과물에서 Photo by 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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