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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Sep 01. 2023

온기의 이야기

음식과 향수

황석영 작가는 음식을 사람끼리의 관계이자 시간에 얹힌 기억들의 촉매라 말했었다.

우리의 밥에 담긴 수많은 얼굴과 이야기를 떠올린다.

영원히 살아있어 사라지지 않는 온기의 이야기들.

그것은 음식의 힘이자 향수이기도 했다.


계절을 대표하던 외할머니의 음식과 여러 종류의 김치가 향수처럼 파고들 때 난 또 한 번 할머니를 생각한다. 그리워한다.

유년의 한 축을 비추던 외할머니의 사랑은 한 상 가득 내어주시는 음식과도 함께였다.

손재주도 음식 솜씨도 뛰어난 할머니의 음식들은 어느 하나 특정하기엔 맛도 모양도 모두 일품이었다.

콧노래도 흥얼거리시며 뚝딱뚝딱 손맛을 담고, 그걸 맛있게 먹는 우리를 행복하게 지켜보시던 할머니의 얼굴이 선연하다.

할머니에게서 비롯된 기준일까.  

불친절한 사람이 야무지게 일을 해내는 것에 반대는 없지만 요리만큼은 선한 마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아무리 맛집이라도 식당의 주인이나 셰프의 인상과 말투, 행동이 먼저 들어오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만든 음식이 타인의 입과 몸에 어떻게 담길 지 소홀하다면 좋은 음식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요리는 인심(人心)을 이길 수 없는 셈.

그런 점에서 여러 개의 사랑과 정이 담긴 할머니의 음식은 실패할 수가 없었다.

그 맛도 사랑도 진짜던 외할머니의 밥을 다시 만나고 싶다.

그 밥을 핑계로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

사랑이 있어 틀린 적 없던 할머니의 손맛을, 한 상 가득 웃고 있던 할머니의 사랑을 다시 먹고 싶다.


계절이 바뀌고, 가을의 사랑이 그리워질 무렵 한 할아버지의 라멘집을 알게 되었다.

EBS에서 방영하는 EIDF(국제다큐영화제)의 출품작이었다.

특정해 기다리진 않지만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만나는 EIDF의 영화는 빛나는 것들이 많아 얻어걸린 보물처럼 짜릿한 설렘이 있다.  

다큐를 향한 애정 어린 취향도 한몫하지만 잔잔히 사람 냄새를 풍기는 톤 앤 매너도 사랑한다.

지난 주말 만난 다큐멘터리 <라멘 먹으러 오세요>는 도쿄에서 비젠테이라는 이름의 작은 라멘집을 오래 꾸려오고 있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였다.

라멘집의 사계를 배경으로 삶과 사람과 음식에 대한 할아버지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흡사 방앗간을 연상케 하는 그의 라멘집은 그를 사랑하는, 또 그가 사랑하는 이들이 친구가 되어 일상을 나누는 아지트였다.

우연히 들어온 라멘집에서 한 그릇의 정(情)을 먹은 이들이 할아버지의 친구가 되어 오랜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고집스레 지켜온 신념마저 이해하고 사랑하는 이들.

그들은 친구 이상의 가족이었다.

그들은 주말이면 서로의 보금자리이자 일터에 모여 노동과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제철의 수확물은 종종 라멘의 식재료로 반영되어 상에 올랐다.

다큐멘터리 <라멘 먹으러 오세요> 중에서 (출처: EIDFOFFICIAL Youtube)

무엇보다 음식에 대한 선하고 강직한 신념이 인상 깊었는데, 영화를 따라 도쿄의 라멘집에 도착한 나는 배불리 사랑을 먹은 사람처럼 든든해졌다.

그것은 포만감을 넘어선 일종의 희망 같았다.

비젠타이의 라멘을 먹은 이들이 무엇도 이겨낼 힘과 위안을 얻는 마술을 나 역시 맛본 기분이 들었다.

행복해졌다.


음식을 매개로 서로 다른 삶들이 행복하게 연결되고 채워지는 모습을 보며, 하늘에 계신 나의 할머니를, 할머니의 사랑을, 황석영의 윤이 나는 문장을 다시 생각한다.    

음식은 사람끼리의 관계이며
시간에 얹힌 기억들의 촉매다


#대문 이미지 출처: 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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