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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Sep 08. 2023

당신의 귀한 날

기억나지 않는 생일

평소 먹던 약이 떨어진 나는 회사 근처 내과를 찾았다.

처음 방문한 병원에서 한 할머니를 보았다.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의 등이 살짝 굽어 있었다.

데스크에 간호사가 접수에 필요한 생년월일과 이름을 물어보았다.

"OO 년 XXX"이라 또박또박 답을 하신 할머니에게 간호사가 되물었다.

"할머니, 월일은요. 생년월일"이라 묻자 할머니는 다시 "OO 년"이라 대답했다.

"아니.. 요. 언제 태어나셨냐고요. 월일"

기본이 친절하지 않던 간호사의 말투에는 이미 짜증이 배어있었다.

"아니요. 며칠에 태어나셨어요. 몇 월! 며칠!"

우물우물하던 할머니가 "6월 말"이라고 하자 간호사가 되물었다.

"6월 며칠이요? 양력! 양력"

이번에도 할머니는 기억나지 않으시는 듯 "6월 말인데.."라며 말끝을 흐리셨다.

할머니와 간호사의 도돌이표 문답이 오가는 가운데 차례가 된 나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처방을 받아 나오니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깜박이는 두 눈에 당황의 기색이 역력하던 할머니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노년에게 기억나지 않는 생일이란 무엇인가.  

젊은 우리가 깜박 놓치게 되는 축하와는 분명 결이 달라보였다.

물론 내게 생일이란 챙김을 받아야 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원체 기념일에 둔감한 성향도 성향이지만 생일은 그저 생일일 뿐이었다.  

스스로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생일은 외려 가족과 지인을 통해 의미를 더해왔다.

분명 감사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일면부지의 할머니의 막힌 답변은 여전히 휘발되지 않고 있었다.    

출생연도와 이름을 또렷이 답하던 할머니에게 잊혀진 그날의 숫자가 자못 쓸쓸했다. 

할머니의 자신 없는 기억이 오래도록 가려진 과거에서 온 건 아니길 바랐다.

매년 돌아오는 그날이 홀로 깜박거리다 지워져버리지 않길.

그날을 기억하고 말해주는 누군가 곁에 함께 하길.

오늘은 당신이 태어난 귀한 날이라고.

그날 당신 곁에 많은 이들이 당신을 보고 기뻐했었다고.  


#대문 사진 출처: 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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