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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Jul 28. 2023

살아있는 행복

우리의 오늘

몸이 불편하면 병원에 가기 마련인데, 나의 미련은 극도의 불편까지 견딘다.

겁으로 느려진 걸음 탓이다.

일상과 달리 병원을 향한 나의 발길은 무모하게 더디고 게을렀다.

그런 의미에서 지척에 마음 편히 찾아갈 의원이 있다는 건 의미가 컸다.

기계에 몸을 밀어 넣는 대신 익숙한 얼굴과 인사로 나의 불편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

불안으로 작아진 마음이 안도로 바뀌는 경험 역시 하나의 위안이었다.  

종합병원보단 의원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동네에 좋아하는 의원이 두 곳 있다.

진료 과목은 가정의학과 정형외과로 각기 다르다.

본래는 안과까지 삼총사였으나, 지난해 원장님이 돌아가시면서 둘이 되었다.


얼마 전 그중 한 곳에서 메시지를 받았다. 원장님의 일신상의 이유로 휴업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토박이로 오래 병원을 지키셨던 원장님은 건장한 체격에 호방한 기운을 가진 분이었다.

걱정에 아쉬움이 더해졌다.

그래도 '휴(休)'업이란 단어에 '언젠가 다시'의 희망을 싣던 나였다.

그러다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지병 없이 건강하던 원장님은 저녁도 잘 드시고 평소처럼 잠에 드셨다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난데없는 이야기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외과를 겸하는 곳인 만큼 원장님은 걸음 한 이들에게 유쾌한 말투로 불안을 걷어내 주는 분이었다.

접질린 발목 때문에 병원을 찾았던 날을 기억한다. 으레 미루고 미루던 끝에 걸음 한 터였다.

- 자, 미인이라 배우처럼 사진이 찍힙니다

농담에 웃는 사이 배우(?) 같은 발목의 긴장이 풀렸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뼈는 불안정하게 이미 붙어버린 상태였다.

- 바로 왔으면 좋았겠지만 뭐 무리한 사용만 하지 않으면 일상에는 지장 없으니 걱정 안 해도 돼요

이야기를 이어가던 원장님은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냐 물으셨다.

물론 나의 대답은 예스였다.

예상했다는 듯 빙긋 웃던 원장님은 후배들 얘기를 꺼내셨다.

후배들 밥을 사주려 나갔더니, 맛집이라고 당신을 데려간 곳이 타코집이었단다.

- 맛집이라는데, 밀가루 맛만 나고 난 무슨 맛인지 모르겠더라고. 근데 또 이 밀가루가 정상 세포를 찢거든. 몸에 도움이 안 돼요  

요즘 젊은이들이 밀가루를 너무 좋아해 큰일이라며, 나이 많은 당신이 젊고 잘 나가는 후배들보다 오래 병원을 하며 먹고 살 비결이 밀가루를 피하고 운동하는 거라 덧붙이시는 원장님의 표정에 확신과 자신이 묻어났다. 함께 웃던 그 사실이 오늘은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원장님의 확신과 자신이 무기력하게 흩어지는 느낌도 함께.


유효하지 않은 간접의 경험들은 오늘에 남은 우리에게 보내는 어떤 신호일까.

갑작스러운 소식들을 지속적으로 만나며 우리의 끝은 무엇에 좌우되는 것일지 겁이 났다.

다만 그 겁 역시 무력하기에 잊는 편이 나을지 몰랐다.

더불어 언젠가부터 나는 ‘다음'이란 말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힘이 없는 미래 보단 살아있는 오늘의 행복이 더 필요했다.   

복습처럼 매일의 행복을 찾는 근육을 키워간다.

다행을 두른 나의 오늘에 감사의 마음이 커져간다.


*대문이미지 출처: 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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