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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Jun 21. 2023

사라지는 계절들

건강한 시간의 경계

철새의 계절이 사라지고 있다.

때문인지 철을 잃고 텃새가 되어버린 무리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생존과 직결된 철새의 이동은 치열하지만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군무 같다.

대형을 이루며 날아가는 새무리는 에어쇼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진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고, 어느새 난 '와아-' 입모양을 하고 있다.


대형에는 나름의 질서가 숨어 있는데, 리더와 팔로우들이다.

질서 정연하게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낙오자를 챙기고 지지한다.

브이자의 선두인 모서리는 리더의 자리다.

리더는 공기의 큰 저항을 이겨내며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무게의 자리는 돌아가며 맡는다.

말 그대로 고통을 분담하며 함께 나누는 시간인 셈이다.

함께 하기에 더 먼 여정도 가능한 새들의 세계는 지혜로운 공조다.  

앞서 가려는 인간의 이기와는 사뭇 다른 자연의 의리이기도 하고.

강변북로에서 만난 새무리. 그들은 잠시 후 낮게 날며 차들 근처를 지나갔다. 일종의 팬서비스였는지도.  


어제 아침에는 한강에서 머물고 있는 까만 무리의 민물가마우지를 보았다.

오는 것인지 가는 것인지 아니면 머무는 것인지 모를 모습으로 가마우지 한 무리가 쉬고 있었다.  

철새에서 텃새화되며 생태계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민물가마우지들을 해조로 보는 시선과 우려도 많다.

하지만 이 변화 역시 기후 위기의 결과라는 점에서 우리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의 여정을 마주하진 못한대도 언젠가 다시 돌아올 시간을 응원했다.

그들의 여정이 기후에 녹아 퇴화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비행의 본능적 감각이 건강하게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철새의 계절은 곧 우리의 계절이기도 하니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허나 생각해 보면 계절을 잃어버린 건 철새만이 아닌지 모른다.

일찌감치 폭염에 놓인 6월의 중턱에서 서로의 달에 침범 없던 뚜렷한 경계의 사계(四季)를 그리워하고 있다.

건강한 시간의 경계가 행복과 얼마나 가까운 지 다시금 체감한다.

먼 훗날 '옛날 우리나라의 사계를 많은 이들이 부러워했지' 라 추억하는 날은 오지 않길 바라본다.


#대문 이미지 출처: Pexels.com


★ 오늘의 추천 BGM

국악 아카펠라 토리스의 곡 중 애정하는 곡 '새타령'. 사람이 내는 청량한 새소리에 반하게 된 곡으로 우리 소리가 들려주는 화음의 진수가 맛깔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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