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4.] <장송의 프리렌> 함께 살아간다는 것
함께 살아간다는 건 기억된다는 사실만큼이나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여정의 끝에서 또 하나의 여정이 시작되는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
두 여정의 방식은 유사하지만 무리를 이끄는 프리렌은 깊어졌다. 힘멜의 마음을 이해한다.
스승의 예견처럼 인간을 이해하고 싶게 된 프리렌.
타자에 대한 이해는 그렇게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돕는다.
함께 하는 여정 그 어떤 것도 헛된 것은 없었다. 함께 한 존재 모두 마찬가지.
그걸 알게 된 프리렌이 있어 기뻤다.
힘멜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힘멜을 기억하게 된 현재에도.
힘멜의 죽음은 힘멜의 삶만큼이나 잊히지 않는 것이었다.
돌아오기 위해 바닥에 과자 부스러기를 심어두던 헨델과 그레텔처럼 힘멜의 다정하고 용맹스러운 궤적들은 여러 생명을 살리고 서로를 기억하게 했다.
프리렌의 스승이 그러했듯 프리렌도, 프리렌이 그러했듯 프렌 역시 가장 좋아하는 '꽃밭을 만드는 마법'은 대개의 마법사들에게는 시시하고 무의미한 것이었다. 하지만 프리렌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일상의 작은 맹아들이 우리의 기적을 만들어낸다는 진실을 말이다.
누군가의 일상을 지키는 길은 길이 남을 기억을 곳곳 물들인다.
세상의 모든 마법은 항상 동화에서 시작한다는 에이젠의 말처럼 사람들을 돕고 구하는 마법 역시 아름다워서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그렇듯 늘 누군가를 돕는 이유를 묻는 프리렌에게 힘멜은 말했었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나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고.
살아있다는 건 누군가에게 알려지고 기억된다는 것
이라고 말이다.
아름다운 눈으로 본 세상은 여지없이 아름답듯 자신을 기억하게 하는 방법에 대해 누군가의 인생을 아주 조금이라도 바꿔주면 된다고 답하는 아름다운 힘멜에게서 그가 지나간 땅에 심긴 희망들을 보았다.
이윽고 맺음 자막과 함께 프리렌 일행의 두 번째 여정이 끝날 무렵 난 무방비로 말랑해진 감정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미동에도 나비처럼 감흥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아 한참을 멈춰 있었다.
이제라도 힘멜의 마음을, 하이터와 아이젠의 마음을 프리렌이 이해하게 되어 다행이다.
그리고 이 땅의 삶과 죽음에 우리가 소홀해지는 일이 없기를.
인생이란 약하게 사는 시간이 의외로 더 긴 법
이라던 에이젠의 말처럼 태어나서부터 떠날 때까지 우린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는 아름답게 약한 존재이니 말이다.
문득 억겁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을 프리렌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대문 이미지 출처: Pexel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