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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Mar 08. 2022

돌고 돌아 만난 사랑

[음악 #3.] 추억의 주크박스

원곡보다 리메이크나 커버곡에 거꾸로 반한 경험이 있다. 그 경우, 첫사랑의 강렬한 기억 때문인지 앞서 만난 리메이크를 더 사랑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시이나링고의 'Love is blind'가 그렇다.

반면, 여전히 원곡이 찐인 케이스는 Bill withers의 'Just the two of us' Toto의 'Georgy Porgy'.


#1. <Gerogy Porgy> by Toto

거슬러가면 내 문화의 르네상스는 대학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유년 시절이 한몫했다.  

하루 1~2편의 영화를 섭렵하며 영화감독을 꿈꾸었던 10대 시절(토요일이면 MBC 주말의 명화와 KBS 토요명화의 기로에서 고민이 많았고, 비디오 가게는 디폴트로 수시 들락거림)이나 몸짓 마음 짓 애정을 표현해 온 어린이 시절까지 합하면, 음악과 더 오랜 사랑을 했지만, 하룻강아지에서 내공이 무르익은 전성기는 명실공히 자유의 몸인 대학 시절이었다.

그때만 해도 난 내가 용감하고 자유롭게 '글 쓰는 + 싱어송라이터 + 감독'으로 살 줄 알았다.  

당시 인디 공연을 보거나 춤을 추러 홍대 바를 자주 찾았는데, 발군의 실력을 갖춘 무명의 밴드들을 발견하는 쾌감과 진가를 평가받지 못한 EP 앨범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날도 어느 작은 바에서 친구와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무드는 익을 대로 익어 마지막 밴드가 무대에 올랐다. 보컬은 가볍게 밴드를 소개한 후 드럼 멤버가 입대 예정이라 오늘이 그의 마지막 공연이 될 거라는 인사를 했다. 그 말에 약속이나 한듯 “아아.....” 하는 탄식이 여기저기 들렸는데, 누가 봐도 드럼의 비주얼이 돋보이게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리라. 당분간 만날 수 없다니 초면의 나도 아쉽긴 매한가지였다.

별 다를 거 없이 내 시선도 드럼을 향해 있었는데, 세션 하나하나 본연의 매력을 발하고, 보컬의 감미로운 보이스가 더해지며 나의 시선은 바빠졌다. 드럼의 비주얼을 이기는 매력의 합주였다.

하나의 취향처럼 바를 채우고 있던 집중의 무드, 매력적 노래와 연주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공간 우리의 결속을 다지는 유일한 힘은 음악 뿐이었다.

밴드에 대한 좋은 기억을 뒤로하고 돌아와 Toto의 곡들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흔히들 Africa와 Rosanna를 Toto의 대표곡으로 꼽지만 단연코 난 말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감미로운 마성의 Georgy Porgy를 이길 순 없다고...  

Georgy Porgy는 일반적인 록과는 개성이 다른 펑키한 리듬의 재즈 록이다.

Georgy Porgey는 영국 구전에 나오는 바람둥이라고 하는데, 고해하듯 감미롭게 고백하니 깜박 용서될 듯도 한 그러나 정신차리고 보면 그래서 더 (영리하고 섬세한) 나쁜 남자 타입이랄까.


It's just that I'm an addict for your love.   
I'm just a young illusion, can't you see.
Georgy porgy puddin' pie


이 곡의 백미는 기타 솔로 파트와 "Kissed↗ the girls and made them cry"의 Kissed에서 키스하듯 살짝 꺾는 기교의 보컬이다.  

Georgy Porgy by Toto (출처: ToTo Youtube)

경계 없이 '록, 팝, 헤비메탈, 재즈, R&B' 등 자유자재로 장르를 넘나들며 그들의 음악을 즐기고 구축해 온 시간이 오래도록 진가를 발하는 비결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안의 첫사랑과도 같은 Georgy Porgy는 가사는 공기 중 흩어져 버릴지언정 멜로디만은 귓가를 영원히 맴돌고 있다.   




#2. <Love is blind> by 椎名林檎

오리지널이 맥을 못 추는 청출어람의 대표 케이스는 시이나 링고의 Love is blind.

Janis Ian의 원곡보다 리메이크가 내게 찐인 이유는 시이나링고 특유의 거침없는 표현과 솔직한 감정이 Love is blind가 가진 사랑의 쓴 맛을 순도 100%로 진정성 있게 표현했기 때문 아닐까 싶다.


"듣고있니. 나 이제 시작해.." 하는 듯 등장하는 의미심장한 구두 소리에 이어 시작되는 현악 멜로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간은 흘려 보내는 듯한 링고의 마지막 가사가 끝남과 동시에 기타, 건반 모든 악기가 격정적으로 한 데 어우러지며 처절하고 아름답게 고조되는 라스트다. 혼합된 감정의 찌꺼기들이 한 데 쏟아져내리는 듯한 비장미마저 감돈다.

시이나링고 보이스 특유의 날카로운 쇳소리도 가사의 슬픔과 이질적이면서도 상호 통하는 무드로 구색을 맞추는 듯하다.

과감하거나 발랄하거나 여성스럽거나 퇴폐스럽거나 요조숙녀 같은 카멜레온 매력은 그녀의 모든 곡에서 표출되지만 'Love is blind'은 새로운 옵션을 하나 더 추가한 것만 같다.

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다양한 변화와 변신은 자신이 어떻게 보여지는 지보다 자신의 관념과 음악을 어떻게 발산할 지에 더 몰입하는 뮤지션으로서 주도적인 그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을 넘을 듯 넘지 않는 그녀의 과격함도 좋다(뭐, 넘어도 좋다).

내가 링고의 라이브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인 やっつけ仕事
몽환적 서정을 강렬하게 라이브로 풀어낸 茎(Stem)  (출처: KA WAAKARI  KA WAAKARI Youtube)

그녀의 라이브 버전들은 앨범 수록곡 못지않게 인상적인 편인데, Love is blind 이 곡만큼은 라이브 버전보다는 앨범 수록곡이 훨 더 좋다(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의 공연 버전은 그 맛이 나지 않는다).

헤드셋을 끼고 볼륨을 높여 나 홀로 듣는 <Love is blind>는 시작과 함께 시적인 가사가 콕콕 박히며 오소소 살이 돋아나는 집중의 괴력을 보여준다.


How long will it take.
Before I can't remember.
Memories I should forget?               
I’ve been burning since the day we met.           

Love is blind. how well I remember.          
In the heat of summer. Pleasure,
winter fades

앨범 버전을 찾지 못해 뮤비로 대신하는 Love is blind (*링고의 뮤비인지는 여전히 미지수) (출처: kikisang Youtube)

이 곡은

Step1. 차 안이나 나 홀로 공간에서

Step2. 에어 팟이나 헤드셋을 끼고

Step3. 눈을 감은 채

Step4. (라이브 공연이 아닌) 앨범 수록곡으로 꼭 들어보길 권한다.


단, 갓 이별한 경험자들은 감정이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을 만날 수도 있으나, 카타르시스의 절정을 맛볼 수 있으니 이열치열의 마음으로 들어도 무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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