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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May 24. 2022

행복의 컬러를 다루는 작가

예술의 원천은 사랑,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85세의 나이. 그는 여전히 유쾌하고 탐미적이다.  

디지털의 영역으로 확장한 세계는 결말을 열어둔 지 오래다.

왕성하게 활약하며 우리의 봄을 말하는 호크니를 보며, 사랑을 이기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 아트 부산(ART BUSAN 2022)은 호크니의 그림 때문에라도 가고픈 마음이 컸다.

그의 그림에 처음 매료된 건 초록이 무성한 '푸른 골짜기(Green Valley)'였다.

곱게 갈아입은 요크셔의 사계(四季)에 마음이 갔다.

취향저격처럼 알렉상드르 페리에(Alexandre Perrier)의 'Mountain and Lakes'를 떠올렸다.

물론 그의 일곱 빛깔 매력 중 시작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Green valley (2008) © David Hockney

한 사람의 작품이라 하기에 호크니 안에는 닮은꼴이 전무한 다양한 장르의 호크니가 살고 있다.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작가 본연의 각기 다른 자아 같다.

한계를 두지 않는 열린 세계이자 지적 호기심의 산물들이다.   

기본적으로 '색과 물, 빛'을 잘 다루는 화가이기도 하지만, '회화, 소묘, 판화, 입체주의'에서 더 나아가 '사진, 디지털 드로잉과 영상'까지 장르의 벽 없이 유영하며 빈틈없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유쾌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

40대가 될 무렵 청력을 완전히 잃고 만 호크니의 공감각은 전화위복처럼 색을 다루는 화가로서의 그의 감각을 유지시켜주었다.

그의 그림이 주는 색의 질감과 층(layer)의 마법은 그림 안으로 들어가고 싶게 만든다.

그는 분명 행복의 컬러를 알고 있다. 마법을 부리듯 능숙하게 색을 다룬다.

 

때때로 나는 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공간을 좀 더 분명하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나는 청력을 잃었지만 소리를 통한 공간감의 상실을 보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화가인 나는 공간에 대한 느낌이 보다 예리해졌습니다.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향의 자연에 빠져 지내던 시간이 초록 감성으로 물들었다면, '캘리포니아 ‘LA'에서 오래 거주하던 활동기는 지역 특유의 선명함을 담듯 한층 대담하고 청량한 빛과 색감을 자랑한다.

이후 10년간 자연주의라 스스로 부르던 회화를 향해 갔는데, 그 시기의 작품들이 그렇다.

(왼쪽부터) 나의 부모님 (1977년) / 사진가와 그의 딸 (2005년) / 클락부부와 퍼시 (1971년) © David Hockney

개인적으로도 추상 표현주의에 대한 반기를 드러내던 음울한 무드의 초기작보다는 야외에서 풍경을 담던 수채화나 주변의 인물을 표현하던 자연주의풍 회화를 더 사랑한다.  

디테일이 살아있고, 컬러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대상에 대한 그의 진한 애정의 징표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물에 탐닉하던 LA 시절과 달리, 고향 ‘요크셔’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몰두했다.

요크셔의 사계는 그렇게 탄생한다.

작업실로 머물던 해변 마을 '브리들링턴' 역시 문만 열고 나가면 넓고 멋진 공간이 펼쳐졌다.

해변을 따라 산책을 즐기는 일과와 더불어 내륙의 초록 풍경은 그에게 파라다이스였다.

모든 환경이 그의 왕성한 창작에 유리한 세계였다.  


이 시기 호크니는 풍경화와 음악 그리고 전원시가 끊임없이 반복해서 다루는 주제 중 하나인 '사계'에 몰두했다. 특히 봄을 말할 때, 모든 식물과 싹과 꽃이 꼿꼿이 서 있는 모습을 '자연의 발레'라 표현하기도 했는데, 그를 닮은 사랑스러운 표현이다.

그는 겨울을 견딘 모든 것들이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자연의 움틈'을 애정의 갖고 바라보았다.

빛이 2분마다 변하는 생생한 이스트 요크셔를 담은 그림 중 같은 공간의 사계 변화를 담기도 했는데, 매월 시간이 흐를 때마다 일어나는 변화는 중세 미술의 화두이기도 했다.

호크니의 가장 큰 두 가지 기쁨인 오랫동안 바라보기열심히 바라보기의 결과였다.

그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무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가 존경하던 반 고흐가 자연의 무한함 속에서 또 다른 신뢰를 발견했다 표현한 것에 호크니는 전적으로 공감했다. 그것은 자연의 무한한 다양성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반 고흐가 북쪽에 있을 때와 남쪽이 있을 때의 그림의 차이는 선명함이라고 표현한 호크니의 관점도 인상적이었다.

남쪽에서는 안개 낀 지평선과 대기 중의 수증기가 없기 때문에 보다 더 단순하게 보게 되는 이치였다.  

프랑스 남부에 머무는 것이 반 고흐에게 엄청난 기쁨을 가져다주고, 이는 그의 회화에서 시각적으로 드러났다는 게 호크니의 생각이었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직접적이라고 느끼는 연유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고흐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다. 나 역시 고흐의 그림을 사랑한다.

나무와 숲이 가득한 <한 여름 : 이스트 요크셔> (2004년) © David Hockney

그는 그 외에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는데, '일러스트레이터, 판화가, 무대디자인, 영화제작자, 포토그래퍼' 로도 활약했다.

다양한 장르와 더불어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폭넓은 범주의 행보를 이어왔다.

그의 포토리얼리즘(Photorealism)을 보여주는 '이른 아침, 생트-막심' (1968년)

호크니를 일컫는 수식 중 하나인 ‘수영장의 화가’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빛, 각도, 흐름의 여부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물의 찰나의 순간을 담는 데 몰입했다.

호크니의 대표작인 <더 큰 첨벙>(1967)을 비롯해 <베벌리힐스의 가정주부>(1966), <일광욕하는 사람>(1966), <닉의 수영장에서 나오는 피터>(1966) 등이 모두 LA에서 탄생한 그림들이다


예술가의 초상 (Portrait of an Artist)  /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 © David Hockney

색의 청량함과 함께 물이 빛에 반사되어 남기는 파장과 그림자는 찰랑거리는 물의 진동이 귀에 들릴 듯 공감각적 환영을 부른다.   

호크니 자신이 '색채와 투명성, 물'에 매료되어 평생을 보낸 것과 직결된다.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수영장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물과 투명성이었죠


'수영장, 샤워장, 스프링클러'는 물을 표현하기 위한 훌륭한 오브제에 지나지 않았다.

'물'을 이해하고, 표현하고자 한 그의 몰입은 내가 호크니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의 한낮, ‘첨벙’ 하는 소리, 대각선으로 튀어나온 다이빙 보드와 수영장, 물로 뛰어든 순간의 생동감과 물이 튀는 장면을 구현하는 데 2주가 걸렸다.


물은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어떤 색도 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고, 시각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다


[The arrival of spring] 시리즈에서도 빗방울이 땅에 떨어지며 튕기는 순간을 소리가 들릴 듯 여실히 표현하였고, 물에 대한 감각적 표현은 Rain(1973)에서도 잘 드러난다.   

비 오는 날의 정취가 그대로 살아나는 이 순간 역시 너무 사랑스럽다.   

'물'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에 더해 가장 애정하는 건 그의 The arrival of spring 시리즈들이다.

고향에서의 안락한 시간을 풍경화로 담았던 기억(The arrival of spring in Worldgate, East Yorkshire in 2011)과 코로나에 맞서 봄에 희망을 거는 노르망디에서의 그림들은 1년(A Year in Normandie, 2020)은 자연과 사계의 아름다움을 여지없이 담고 있다.  

자연 본연의 색으로 반짝반짝 윤이 난다.  

2000년대 들어 고향 요크셔에 정착한 호크니는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캔버스에 옮긴 대형 회화들을 제작했다.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이 대표적이다.  

6주에 걸쳐 완성한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2007년) © David Hockney

하지만 호크니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상은 그림에만 있지 않다.

사랑스럽게도 실험적인 그의 젊음은 아이폰을 대하는 일상에도 묻어난다.

그에게 아이폰은 그림을 그리는 도구 이상의 놀이기구다.  

가상의 전기면도기 앱으로 '지지직' 소리를 내며 면도를 한다거나, 폰으로 디지털 맥주 한 잔을 마시는 즐거움 외에도 만질 때마다 즉각 반응하는 가상의 금붕어가 있는 연못을 즐기는 모두 그의 강렬한 지적 호기심과 위트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것은 비단 가상의 면도기나 맥주가 아닌 새로운 판도의 미술 매체가 자신의 손 안에서 장난감처럼 살아있다는 사실에 갖는 흥미에 가깝다.

청력이 소실되어버린 그에게 전화 본연의 기능은 취약하기 마련이었다.  

매일 아침 싱싱한 꽃을 그려 친구에게 전송하는 즐거움을 그는 택한다. 그에게 아이폰은 전화를 걸고 받는 용도가 아닌 근사한 시각적 도구로 분한 것이다.

2009년부터는 애틋한 감정을 가진 아이패드를 케치북 삼아 지면의 제약 없이 일상을 기록중이다.

아이패드와 붓 애플리케이션으로 실현 가능한 양질의 흔적과 질감을 탐미하며, 그래픽의 방식으로 체화중이다.


나는 돈에 대해서는 욕심을 내지 않지만, 흥미진진한 삶에 대해서 욕심을 냅니다.
나는 삶이 항상 신나기를 바라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물웅덩이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에서도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지요. 나는 쓰러지는 날까지 신나는 삶을 살 작정입니다.


우리는 기억과 함께 봅니다. 내 기억은 당신의 기억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같은 장소에 서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같은 것을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기 다른 요소가 작용합니다. 이전에 어떤 장소에 가본 적이 있는지, 그곳을 얼마만큼 잘 알고 있는지 등이 당신에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시각이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하지 않습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아이패드의 훌륭한 점은 스케치북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준비된 물감을 비롯한 모든 것을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지요. (중략) 그 드로잉은 5분 안에 완성되었습니다. 많은 아이패드 이미지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딱딱한 선과 부드러운 선의 유희를 보여줍니다.
그의 작품 그리고 반려견 '루비'와 함께인 데이비드 호크니 할아버지

자신의 그림 속 오브제처럼 매력적인 컬러와 생동감으로 살아가는 호크니의 지치지 않는 젊음과 사랑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의 유쾌한 지적 호기심이 자유롭게 팽창해 그의 세계를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우리 개 루비에게 그런 것처럼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음식과 사랑뿐이며,
예술의 원천은 사랑이라고 믿는다.
삶을 사랑한다

I think I like when it rains by WILLIS (출처: WILLIS Youtube)
Rainfalls by 슬롬 (출처: Slom - 주제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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