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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Jun 10. 2022

고전하지 않기 위해 고전

[문장우리기] #4. 고전의 대문 by 박재희

유행을 타지 않는 글.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는 보편적 진리를 '고전(古典)'이라 부른다.  

업그레이드 따위 없이도 같은 모습으로 현존하며 막힘없이 답한다.  

시대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가치다.

나는 오랜 것을 좋아하고, 선인들의 옛말처럼 고전을 신뢰한다.  


'나는 내 뜻을 소중하게 여기며 정성을 다해 살고 있는가?'

성리학이 추구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기본 화두는 인간의 존엄성이다. 나 자신과 우리를 모두 소중히 여기는 귀한 마음이다.

[사서]에서 공통적으로 취하는 깨달음 역시 모두 '나'에게서 출발한다.  

어떻게 잘 살아갈 지, 일할 지, 행복할 지에 대한 모든 물음의 기저에 ‘나'에 대한 고찰이 깔려있다.

‘나’로 출발해 '우리'로 확장되어 공생의 형태를 띠는 '함께 이로운 행복'의 상태를 취한다.

 

[사서] 중에서도 <대학>은 리더십의 학문으로 불리지만 자기경영(Self-management) 측면에서 보면 모두와 상관이 있다.

자기경영은 나를 경영해서 나의 영혼을 떨리게 하고, 나아가 내 주변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대학> 역시 '자기경영, 내 주변의 새로운 변화, 내 주변과 함께 목표를 달성'하는 세 가지 과정을 통해 리더십을 실현한다.


<대학>을 총망라하면 아래와 같다.

"내 덕을 밝히고(明德), 세상을 변화시키고(新民),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라(至善)." 그러기 위해서는 몰입(格物)과 앎의 확장(致知), 내 영혼을 속이지 않는 성실함(誠意),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正心), 나 자신의 경영(修身), 집안 경영(齊家), 국가 경영(治國), 세계 평화(平天下)의 단계적 실천이 중요하다. 무슨 일이든 순서가 있다. 먼저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知止). 그러면 목표가 확실해지고(有定), 몰입할 수 있으며(能靜), 안정감이 생긴다(能安). 그 안정감을 기반으로 깊은 사고에 도달하게 되고(能慮),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能得)                  _  책 <고전의 대문> 중에서 (P67)


자기 안에 몰입해 답을 찾고 성장하도록 이끌고 있다.

머리가 무겁던 시기에 저 글귀를 반복해 읽곤 했다.

원대한 포부는 아니어도 막히고 엉킨 생각들이 정돈되는 기분이었다.


그중에서도 ‘성의誠意, 정심正心, 신민新民' 이 세 가지를 가장 좋아한다.

마치 내 마음에 들어와 안기는 기분이다.


#1. 성의誠意 _ 나를 속이지 마라

'성의'는 '내 마음을 속이지 않고,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다.

'성의껏 한다, 성의를 보이다'의 그 단어다. 다른 말로 '신독(愼獨)'이라고도 한다.

가장 취약해지기 쉬운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에서도 자신의 영혼을 놓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나를 속이지 않는다는 <중용>의 개념이다. 혼자 있을 때일수록 바르게 처신하라는 의미다.

나의 내면에 성실이 있으면, 바깥으로 저절로 드러난다는 뜻(성어중 誠於中 형어외形於外)과도 상통한다.  


#2. 정심正心 _ 슬퍼하되 상처나지 마라 

'내 마음을 바르게 하라'.

인간의 마음을 흐드는 기쁨과 슬픔 감정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에 종속 당하여 끌려가지 말라는 의미다. 슬픔이 슬픔에 빠지는 딜레마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바로 붙잡고 있는 상태와도 같다.


#3. 신민新民 _  흥의 혁명

신민의 경영은 '흥'의 혁명이자 '인간의 영혼' 혁명이라고 한다. 이때 흥(興)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 흥과 같지만 인간의 위대한 자원이자 새로운 미래를 여는 열쇠로 간주된다.

무엇보다 '흥'이라는 단어부터 마음에 든다.

<고전의 대문>의 저자인 박재희 교수는 '흥'은 하늘이 부여한 덕이자, 인간에게 내재된 덕이라 했다.

돈과 이익보다 ‘영혼의 흥을 위해 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나 역시 영혼의 흥을 위해 살기를 바란다. 무언가에 빠져 몰입할 때의 기쁨과 결과를 알고있기 때문이다.

흥은 ‘자발적 몰입의 촉매’와도 같다. 흥에 겨운 상태는 대상에 빠져들어 변화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된다.

과정의 행복이 분명하다.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는 결이 다르고, 본능과도 같이 내 안에서 뿜어나오는 막강한 힘도 있다.


신민의 경영에 있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혁신과 혁명을 통해 새로운 생존을 모색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새로운 가치와 세상을 꿈꾸게 하고, 새로운 틀의 세상을 만드는 기개와도 같다.


타자의 시선이 아닌 내 시선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가? 물질적 성공에 종속당하지 않고 내 영혼의 충만감을 느끼고 있는가? 다음이 아닌 지금 나는 얼마나 내 실존의 무게감을 느끼고 살고 있는가? 타율적 삶이 아닌 자율적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념에 흔들리지 않고 냉철한 철학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이런 자기 르네상스의 혁명이 바로 흥興의 혁명입니다. P63      <고전의 대문> - 대학 중에서


<대학>의 구절 중 좋아하는 ‘심성구心誠求, 수부중雖不中, 불원의不遠矣니라'.

'당신의 마음이 진실로 구한다면, 비록 그 원하는 것이 적중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에서 그렇게 멀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논어> 중 ‘어려울 때 남에게 답을 찾으려 하지 말라. 내 영혼에게 답을 찾아라. 그러면 그 안에 답이 있을 것이다'와 같이 ‘나’라는 근간은 서로 통하고 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건 '군자'에 대한 정의다.

<논어>에서 '군자'는 어려울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겉과 속이 모두 알찬 사람을 가리킨다. 자신의 영혼의 울림을 가장 중요한 삶의 기준으로 삼는 자다.

‘자신의 영혼의 울림’. 이 역시 매력적인 이상의 상태다.


내가 좋아하는 논어의 한 구절 '인자仁者 기언야인其言也訒'는 진정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말이 화려하지 않다는 뜻이다.

공자가 생각하는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사랑’은 아끼는 마음에서 시작하고, 아끼기에 사랑은 무릇 깊어진다. ‘나를 사랑’하는 것에서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인은 확장한다. 결국 타인에 대한 사랑과 아낌을 인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부터 사랑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고,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타인도 사랑할 줄 모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인간 관계의 '선행'은 결국 관점의 전환입니다. 내 관점에서 상대방 관점을 전환하여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감동시키는 것이 관건입니다.       P139    <고전의 대문> - 논어 중에서


반면, <중용>은 우주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의 방식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우주적 삶'이란 인간이 우주가 부여한 자율 조정 장치를 통해 자신의 삶에 중심을 잡고 균형을 맞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 치우치지도 넘치거나 모자라지도 않은 자기중심과 균형을 잡고 살아가는 인생이다. 끊임없이 자기 평형을 찾아가며, 유연성의 답을 찾아내는 역동성, 생동성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에 주자에게 ‘중용적 삶’이란 평생을 두고 지켜야 할 지속적인 삶의 가치와 같았다.


나는 오늘 무엇을 쉬지 않고 있는지를 물어보아야 합니다. 내 꿈을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하고 있는가? 내 삶은 지금 나의 영혼을 좇아 살고 있는가? 나는 지금 우주와 한 호흡으로 살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아가 나의 삶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것이 진정 우주의 원리를 좇아 사는 중용적 삶입니다. P307      책 <고전의 대문> - 중용 중에서


살아가면서 종종 답이 간절한 순간을 만난다.

나에게 묻고 내가 답하는 대화로 답을 찾지만 생각처럼 모든 게 해결되진 않는다.

정답보다는 최선으로 만나는 대안이라 생각한다. 오늘의 답이 내일의 답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주역>의 구절 중 '궁즉변窮則變이요, 변즉통變則通이요. 통즉구通則久요 구즉궁久則窮이라.'.

'세상은 문제가 생기면 변하게 되고, 변하면 답이 만들어지고, 답이 만들어지면 오래가다가, 오래가면 또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처럼 세상은 돌고 도는 순환의 이치를 따르므로 오늘의 행복과 답이 영원할 수 없다.

다만 역경에서 생겨나는 힘은 발전을 만들고, 생각이 고이지 않도록 지속하게 하는 긍정도 있다.  


고전의 오랜 말들 사이를 유영하다 그늘에 잠든 기분으로 비움과 채움을 오간다.

오늘의 깨달음이 흔들리고, 잊히기도 하겠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기에 다시 꺼내어 안고 싶을 이야기를 꼬옥 안아본다.

Funky Stuff (출처: Jiro Inagaki&Soul Media-Topic Youtube)
The Things You Do by 슬롬 (출처: Slom -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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