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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Jun 08. 2022

좋아하니까 해피엔딩

그림자 아트와 영화 <벨지안 랩소디>

빈센트 발(Vincent Bal)은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다.  

하지만 오늘날 더 친숙한 수식은 '그림자 아티스트'다.

그는 사물이라는 팩트에 빛과 그림자로 판타지를 입힌다.   

일상을 소재로 한 발상은 타나카타츠야의 감성과 유머와 데칼코마니 된다. 마치 따로 또 같이 펼치는 유쾌한 이중주 같다. 코로나 시기 대다수의 아티스트가 그러했듯 그 역시 마스크를 소재로 일상을 환기하기도 했다.


스머프의 나라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시절부터 그림을 그리며 보냈다.

어릴적 꿈도 코믹스 아티스트.

영화 제작자가 된 이후에도 '스토리보드, 콘셉트 도면, 평면도' 등 그림은 늘 그의 삶 가까이에 있었다.

어느 날 시나리오 작업 중 찻잔의 그림자에서 영감을 얻은 코끼리 이미지가 인스타그램에서 반향을 불러오면서 그림자 아트는 우연처럼 시작되었다.


일상의 유리잔은 석양 혹은 다리가 되고, 바다 그리고 하얀 눈밭이 되기도 한다. 물고기의 비늘, 드레스가 되었다가 서커스 무대, 티타임의 따사로운 공간으로도 분한다.  

무엇이든 수용 가능한 열린 세계를 만든다.   

그는 마법 같은 자신의 세계를 영감이 필요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장난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하지만 굳이 영감을 찾지 않더라도 커피 한 잔의 여유 같은 삶의 유머는 소중하다.    

그의 생각과 손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관객의 즐거움이다.

(출처: @vincent_bal)



- 지난봄엔 매일 아페리티프(식전 와인)를 마실 때쯤 작품을 만들기에 아주 유용한 빛이 부엌 바닥에 드리워졌다. 그 무렵 나는 그림을 그릴 새 소재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이 빨간 구두를 발견한 것이다. 아내가 결혼식 날 신었던 구두다. 지금도 맞는다.

Love on shadow beach

- 지난여름에 휴가를 보냈던 곳에서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태양이 자애롭게 빛나는 파티오로 달려갔다.

모두가 잠든 동안 나는 멋진 그림자를 찾을 때까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실험했다.
그림자를 배경으로 사용한 건 이게 처음이었다.
이 그림자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오스탕드Oostende의 해변을 떠오르게한다.

            _ 책 <어메이징 그림자 아트> 중에서


구름이 발달된 나라에 사는 만큼 빛보다 활용이 쉬운 옛날식 전구도 종종 도구로 삼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연 그대로의 빛을 선호하기에 그의 작업은 해가 지기 전까지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자연히 빛과 그림자에 대한 이해는 '그림자학(shadowology)'의 참고도서로 활용될 만큼 과학적으로 깊이가 있다.

그는 작품의 전 과정을 '진실을 찾아 비밀을 밝혀가는 마법'으로, 결과를 '그림자 속 숨어있는 무수한 생명체의 발견'으로 간주한다. 여기에서 발견은 감춰있던 역량을 발굴하듯 작품 속 생명 불어넣기와 유사하다.  


그림자아트는 진짜 햇빛으로 만들어진다. 노하우가 생기면 햇빛이 언제, 어디를 비추는지 정확히 알게 된다.


그림자 속에 숨은 생물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니! 정말 짜릿하다. 진실을 향해 조명을 돌리기만 한다면 모두 볼 수 있다.


나는 간단하지만, 지극히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숨기고 있는 듯한 물건을 발견하면 빛을 비추는 것이다. 종이 위에서 물체를 몇 번이고 돌려보아야만 비밀이 밝혀질 때도 있다. 한순간, 숨겨져 있던 무언가가 어둠의 왕국에서 걸어 나와 모습을 드러낸다. 마법 같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이 놀라운 이유는 한 장의 사진에 서로 다른 두 세상, 즉 현실과 판타지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나의 하루에는 그 ‘판타지’가 필요하다. (중략)
영감이 필요한 당신에게는 이런 장난들이 필요하다.
                                                                                           
                                                                                          _ 책 <어메이징 그림자아트> 중에서  

                                                                                       

아트의 마무리는 '이름 붙이기'로 여기에도 그의 위트와 감성이 묻어난다.

재기발랄한 스토리텔링도 타나카타츠야와 닮은꼴인데,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이 등지고 있는 그림자가 The talker의 상반된 인물로 탄생하거나, 샤프 꼭지에 달린 '공주'의 그림자가 아버지 '왕'이 되어 'Father always watching'이라 불리는 것처럼 보는 재미와 해석의 재미를 동시에 전해준다.   

맨 왼쪽의 작품명은 'the thinker&the talker'. 생각하는 사람이 만든 그림자가 정반대의 상황을 연출한다


빈센트 발의 그림자 아트를 보면서 그의 본캐와도 같은 영화가 궁금해졌다.

뮤지컬 코미디를 이유로 고른 ‘벨지안 랩소디(2014)’는 따뜻한 스토리도 좋았지만 진미는 단연 '음악'이었다. 다소 밋밋할 수 있는 이야기에 훌륭한 토핑이 되어준다.

'벨지안 랩소디'는 브라스 밴드의 사람 냄새 나는 음악과 사랑, 우정을 담고 있다.

유럽 타이틀 매치에 벨기에 공동 대표로 출전하는 세실리아 팀과 아반트 팀. 한 나라를 대표하지만 두 팀이 구사하는 언어는 다르다. 화합을 말하지만 쉽사리 융화되지 않는다.

알게 모르게 서로를 견제하는 가운데, 세실리아 팀이 아반트 팀의 솔리스트(위그) 섭외로 공백을 메꾸면서 두 팀의 갈등은 극도로 심화된다.  

팀 스폰서의 아들과 결혼을 앞두었지만 건조한 감정을 느끼던 매니저 엘카는 자유분방한 위그에게 끌리고, 위그의 적극적인 구애에 운명처럼 흔들린다.

엘카와 위그의 관계에 화가 난 스폰서가 대회 당일 차량과 악기를 회수해 사라지는 난관에 봉착하고, 우여곡절 끝에 대회장에 도착하지만, 공연을 코앞에 두고 웃픈 몸싸움을 벌이며 두 팀 모두 참가 자격을 박탈당하고 만다.  

허탈한 마음은 감출 길 없지만 대회장을 벗어나 그들만의 합주를 즐기며 유쾌하게 마무리되는 결말은 제목 '벨지안 랩소디'를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했다.    

실제로 랩소디(rhapsody)는 '관능적이면서 내용이나 형식이 비교적 자유로운 환상적인 기악곡'을 말한다.

세실리아와 아반트 팀 단원 모두 저마다의 본업을 가지고 성실히 살아가는 이들이다. 음악에 자긍심은 갖되 프로가 되려 연연하진 않는다.

그저 좋아서 음악을 한다.

'벨지안 랩소디'는 그들의 음악에 대한 격의없이 순수한 열정일 수도, 그들이 취하는 음악의 자유로운 형태일 수도 있다. 혹은 그들의 뜨겁고도 진정한 자유인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그들은 결과를 떠나 결과적으로 행복하다. 음악을 나누며 화해를 하고,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스며든다.

음악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고, 앞으로도 함께 할 테니 그들에게는 해피엔딩만 남았다.

부모님 결혼식 때 틀었던 곡을 추억하는 엘카                          Tombe la neige 눈이 내리네(출처: Salvatore Adamo-To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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