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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Jun 23. 2022

영롱하게 빛나는 것들

장 미셸 오토니엘 : 정원과 정원

오토니엘에게 ‘정원'은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는 안내장과 같다. 그 세상은 온전히 꿈꾸도록 구축된 독립적 공간이자 교감의 상대다.

전시를 준비하는 장소와 교감하는 그에게 '정원'은 꿈을 꾸게 하는 마법의 공간이자 끝없는 영감의 원천인 보물창고였다.


'정원과 정원'이라는 타이틀에 마음이 먼저 동했듯 공간의 속성에 따라 다른 얼굴을 하는 그의 작품이 우리의 정원을 만나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했다.


전시 소개를 보면, '정원과 정원'은 실제 복수의 전시 장소(서울시립미술관, 야외조각공원, 덕수궁 연못)를 지칭하는 동시에 예술로 재인식되는 공간 그리고 작품을 거쳐 관객의 마음에 맺히는 사유의 정원을 포괄하고 있다. 더욱이 어린 시절부터 각양각색의 꽃과 그에 얽힌 신화에 매료되었던 오토니엘에게 정원은 향수 그 이상의 의미로 작용한다.


아름다움을 만들지만 아름다움이 궁극의 목표가 아니듯 그의 작품은 유리의 속성과도 닿아있다.

수공의 과정에서 생긴 유리의 흔적은 구슬 하나로만 보면 흠집으로 보이지만 하나의 목걸이로 연결되었을 땐 조화로운 아름다움으로 분한다.

유리벽돌에 섞인 불순물이 벽면에 다채로운 빛의 결을 만드는 공식 역시 아름다움이 상처를 통해 더욱 빛나듯, 상반된 가치와 속성이 서로를 의지하고 지켜가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이때의 정원 또한 새로운 생명이 죽음에서 양분을 얻어 소생하듯, 인간의 삶 역시 고통의 과정이 역설적으로 희망을 불러오는 것과 같다.


여행이나 전시를 통해 경험하는 나라에 대한 이해와 교감에 특화된 작가답게 오토니엘은 이번 전시에서 덕수궁이 주는 고즈넉함과 시적 사색의 배경을 지키고자 신경 썼다.   

덕수궁 건축물에 사용된 문양에서 착안한 <자두꽃> 연작과 과시적 크기로 돌출시키지 않은 ‘황금연못'이 그 예다.  

다양한 나라의 예술가들과 협업을 시도하며, 예술로 소통해가는 유연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나의 판타지는 가족을 만드는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인 가족.
다양한 분야, 다양한 예술가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동료이자 친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공유하고, 토론하고,
가능하다면 세상에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랄까.
이건 판타지, 그 이상이다.
꿈이다.


그가 작품의 소재로 삼은 '유리벽돌' 역시 인도 여행길에 도로 주변에 쌓인 엄청난 양의 벽돌을 모듈로 삼은 경우인데, 인도의 건축 과정 중 가장 고귀한 요소로 간주되는 벽돌은 언젠가 내 집 마련의 희망으로 쌓아두는 대상이자 기다림을 견디는 희망의 재료이기도 하다.

오토니엘은 매일 색을 입힌 벽돌들의 새로운 조합을 그렸는데, 이는 마치 그가 느끼는 감정을 적은 일기와도 같았다. 이 일기의 연장선으로 전시된 <프레셔스 스톤월> 연작은 매일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하는 염원을, 우리 내면에서 찾을 수 있는 마법의 힘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게 아름다움이란 영혼을 일깨우는 거룩한 여정이에요.
아름다움은 어느 문화에서나 공통적으로 존재하기에,
우리가 서로를 평화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죠.


무엇보다 천장에서 쏜 조명이 벽에 반사되어 만들어지는 불빛이 마치 불멍의 한 자락처럼 시선을 붙잡는다. 그중 불빛 하나는 마치 환생해 날아오르는 나비의 형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2,750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벽돌로 창조된 <아고라> 역시 미래주의적 느낌과 과거 인류의 집단적 기억이 동시에 드러나며,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는 은신처이자 표현의 자유가 허락된 열린 공간도 되어주고 있다.  


(왼쪽부터) <아고라> 안에서 바라본 오라클,  <오라클>, 나비를 연상케하는 불빛을 발하고 있는 <프레셔스 스톤월>


그의 시그니처인 유리구슬은 영롱한 빛과 더불어 그러데이션으로 입체감을 살렸는데, 덕분에 오묘한 에너지를 풍긴다.

유리구슬은 내부의 메탈 바에 구슬들을 알알이 꿰어 완성한 형태로 전시가 끝나면 해체해 넣어두었다가 재조립하는 방식이다. 한 알 한 알 공들여 꿰매는 과정을 생각하니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옛말이 떠오른다.

흠집을 가진 구슬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를 의지하며 주변을 비추는 모습은 유리의 차가운 속성을 뒤집는 따뜻한 공존과 포옹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재질이 그 형태를 바꿀 때 자신의 가장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성질이
제 자신과 같다고 느꼈어요.
불안하고 확신이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의
제 모습과 비슷한 유리의 속성에 끌렸지요


전시에 앞서 가장 기대했고, 기대해 부응했던 건 단연 <푸른 강>이었다.  

희망을 속성으로 한 벽돌이 고귀한 색을 두르고 다채롭게 빛나고 있는 <푸른 강>은 '물'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실제 세계와 마법의 세계에 걸쳐있는 '거울' 같은 느낌을 준다.

다채로운 파란 결이 뒤섞인 조각들로 강은 마치 살아있는 듯 보인다.

벽돌의 푸른색은 인도어로 '피로지(Firozi)라 불리는데, 하늘과 물을 상징하는 색이자 만들기 까다로워 귀하게 취급되는 컬러다. '생명, 생존'과 같은 긍정적 의미를 전달하는 푸른 강 위로 설치된 <매듭> 조각들은 강과 얼굴을 마주한 채 서로를 비추고 있는 듯했다.

<매듭>은 자크 라캉에게 경의를 표하는 <라캉의 매듭> 제작 후 연작으로 선보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수학적인 감각이 담긴 작품으로 마치 뫼비우스의 띠가 얽혀있는 듯 복잡한 구조의 매력이 눈길을 끌고 있었다.

바닥의 <푸른 강> 과 공중에 매달린 <매듭>

야외정원에 설치된 <황금 목걸이>는 오토니엘은 대표하는 이미지로 나무에 영험한 힘을 부여해 소원을 비는 인류의 오랜 풍습을 떠올리게 한다. 소원을 적어 리본으로 묶어둔 '위시 트리(Wish Tree)'를 연상케 하는 동시에 우리 안에 있는 열망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황금 목걸이 @서울시립미술관 야외정원

배턴을 이어받아 덕수궁에 설치된 <황금 연꽃> 역시 한국에 여러 번 방문하면서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된 연꽃 문양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순결, 지혜를 상징하는 '연꽃'의 씨앗은 천 년이 지나도 꽃을 피울 수 있어 '생명력, 다산, 창조의 힘'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는 방문 당시의 '덕수궁'을 내적인 명상의 시간을 갖기 좋은 곳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작품 역시 한국 정원의 시적인 분위기에 살며시 스며들게 하고자 과시적인 크기로 만들지 않았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자연과 대화를 나누듯 살며시 포개진 작품을 느끼기 바란다는 부탁과 함께...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자체로도 좋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과정과 역사는 아름답지만은 않은 법이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오토니엘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라는 환상은 그 안에 상처를 담고 있기에 간절한 희망으로 더 빛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깨지기 쉬운 낱알의 유약한 구슬들이 단단하게 연결되어 힘을 발하는 공존처럼 말이다.

오래 기다렸던 단비를 반기며, 그의 ‘아름다운 춤’을 떠올려본다.


예술에도 영성이 있다고 이제는 믿어요.
단순히 하나의 물체, 오브제가 아니에요.
예술은 우리의 인생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주죠.
어떻게 보면 예술은 인생보다 더 흥미로워요.

베르사유 정원에 설치된 ‘아름다운 춤(Les Belles Danses)’, ‘여행자들의 키오스크(Le Kiosq) (출처: VOGUE)
Aguas de Marco by Antonio Carlos Jobim, Elis Regina (출처: thatkrishna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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