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보단 버스를 편애하지만
'그레'를 정비센터에 맡겼다. 최소 일주일이라니 긴 불편이 익숙지 않다.
그간의 출퇴근은 플레이리스트와 고즈넉한 낙(樂)을 채우던 애정의 루틴이었다.
시간의 효율에도 주저없이 전철보단 버스이지만, 노선이 마땅치 않은 당분간 옵션은 택시와 전철로 좁혀졌다. 버스를 편애하는 나의 변은 지하철은 창 밖 시야가 갑갑하고, 시선 두기 불편하다는 데 있다.
음악을 들으며 창 밖 풍경 보기를 좋아하는 취향도 이유를 거든다.
보는 재미와 듣는 재미가 멀티로 실현되는 살아있는 시간같다.
어제는 전철을 탈 요량으로 스니커즈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여러 번 유혹이 있었지만 택시를 타진 않았다.
역에 다다를 무렵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흔한 풍경이었지만 눈길이 간 건 남자가 어딘가 달라보여서였다. 십대 후반 혹은 스무 살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어딘가 불편해보였다.
시선 처리나 손동작이 어색했다. 마주오던 행인에게 전단지를 내밀었지만 모두가 외면했다.
연달아 갈 곳을 잃은 남자의 손이 민망한 지 머리를 긁적였다.
가서 받아줄 요량으로 걸음을 서두르는데, 남자가 주춤주춤하더니 걸음을 옮겼다.
역 입구와 거리를 두고 선 남자는 용기를 잃은 사람마냥 전단지를 안고 어색하게 서 있었다.
전단지를 받아갈 마음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에게서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가가 전단지를 달라고 할까 고민하다 그도 이상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반쯤 내려가다 돌아보니 어느새 남자가 돌아와 있었다.
고약하게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의 손을 지나쳤다. 그가 더 의기소침해질까 싶었다.
남자의 무거운 잔상을 안고 전철에 올랐다.
'다시 올라가서라도 받고 올 걸..' 하는 후회와 잘 마치고 돌아가길 바라는 응원이 함께 맴돌았다.
피크타임이 아니라 그런지 내부는 생각만큼 붐비지 않았다.
습관처럼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틀었다. 얼마 후 자리가 났지만 시선만은 여전히 자리잡지 못하고 구경하듯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플레이리스트 역시 저 혼자 흘러가고 있었다.
왼편의 남자는 토마호크를 맛있게 굽는 캠핑 유튜브를, 오른편의 여자는 뉴스 영상을 보고 있었다.
각자의 관심사가 보였다. 시선을 돌리자마자 맞은편 여자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그녀도 나도 불편하지 않게 시선을 옮겼다. 맞은편 상단에 빽빽이 들어선 광고물이 보였다.
직장인들의 먹을 권리를 누리자 비플식권페이.라고 적혀있다.
다음 정거장에서는 희끗희끗한 머리에 하와이안 남방과 카키색 반바지 차림의 아저씨가 탑승했다. 서글서글한 인상과 옷차림이 찰떡같이 어울리며 인심 좋은 할아버지 냄새를 풍겼다.
좀 전 눈이 마주친 여자의 옆자리에 친구로 보이는 귀여운 인상의 여자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웃고 있는 여자의 안쪽 발목에 주먹 크기의 장미 문신이 보였는데, 이질적이란 생각을 하다 나의 편견이지 생각한다. 오른쪽 맞은편의 남자가 신은 샌들은 카멜색에 보드라워 보이는 소재다. 어디 건지 궁금할 정도로 심플하고 예뻤다. 대나무나 라탄을 닮은 본 적 없는 생김의 샌들이었다.
그 옆칸 좌석으로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양옆의 자리는 누구도 앉지 않고 비어있었다. 얼굴과 옷차림을 봐서 뭔가 안타까운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도 태어났을 때 부모에게 웃음이고 축복이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스쳐가고, 하늘에서 부모가 지켜보고 있다면 얼마나 마음 아플까 하는 심정이 되었다.
내리려면 멀었고, 졸음도 몰려왔지만 마음 편히 눈이 감기진 않았다.
학교 때 버스에서 졸다가 창에 머리를 박은 후로는 웬만해선 자지 않는다. 쿵 소리에 내가 놀라 깼는데, 창피해 다시 잠들고 싶은 기분이었다.
창밖 대신 다양한 피로가 묻은 얼굴들을 마주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정말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제법 긴 시간을 눈으로 마주하며, 북적대는 세계가 조금은 덜 낯설게 느껴졌다.
집에 들어서니 낯섦에서 해방된 듯 익숙한 공기에 허기가 밀려왔다.
폭신하고 달콤한 팬케이크가 먹고 싶었지만 어떠한 메뉴로도 속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
버터를 녹인 팬에 스테이크를 올리고 와인을 꺼냈다.
전철 속 바쁜 시선을 따라 혼자 흘러가던 음악도 다시 재생했다.
익숙하게 제대로 감기는 노래를 따라 나의 저녁도 완벽하고 맛있게 익어갔다.
# 오늘의 추천 BGM _ 불금의 경쾌함을 리듬에 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