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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Aug 06. 2022

진실에 가까운 언어

[문장우리기] #6. 박경리 작가와 밀란 쿤데라

어떤 기술이 나온 들 우리는 눈으로 본 그것을, 마음으로 느낀 무엇을 시각화된 진실처럼 찍어낼 수 없을 거라 장담한다. 그것이 언어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그저 진실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일 뿐 말이다.


여인이 밭을 매다가 허리를 펴고 문득 머리를 들었을 때
그곳에 노을이 있습니다. 그 여인은 그 노을에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함께 슬픔을 느낍니다.
이 비감은 언어보다 훨씬 진실에 가깝습니다.
_ <Q 씨에게> 중에서  

박경리 작가의 산문 속 문장처럼 눈앞의 비경을 카메라로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듯 우리의 세밀한 감정을 언어로 시각화하기는 무리가 따른다. (물론 그것을 보란 듯 해내는 이들이 작가임을 잘 알고 있다.)

그건 아마도 '언어'라는 형식에 '마음'이라는 본능을 이미 한 번 가둬버리는 현실 때문이거나,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언어라는 망에 거름으로써 진실이 새어나가는 연유도 따를 것이다.

그 감정을 말로 거르는 순간 감정은 휘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산문 속 여인의 가슴에 뭉쳐 있는 슬픔은 여인만이 아는 감정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섬세함을 오롯이 쫓기에 언어의 세계는 분명 한계가 있다.

정해진 재화처럼 단어 역시 한정되어 있다.

다만 한정된 언어를 얼마나 폭넓게 매력 있게 활용하는가가 큰 차이를 가져온다.

언어가 진실에 가까워져 가는 과정이다.


일상의 대상과 현상을 심장이 쫄깃해지는 언어로 표현하는 세계가 경이로운 것도 그중 하나다.

탐이 나는 표현들을 보며 감탄하고 한 수 배운다.

같은 것을 보고 그 이상을 표현할 수 있는 작가의 재간이다.

예컨대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읽으며, 단단한 어깨 같은 문체 안에 감성을 관통하는 섬세함에 감탄하는 일이 수두룩했다. 카리스마 가득한 남자가 드라마를 보며 조용히 눈물을 훔칠 것만 같은 거대한 정서적 공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글과 표현들을 동경하고 좋아한다.   


그 당시 그는 은유란 위험한 어떤 것임을 몰랐다. 은유법으로 희롱을 하면 안 된다. 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_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나는 바람이 불어 들어와 얼른 이 무용한 오후의 모든 기억을, 냄새나 느낌의 모든 잔재를 다 쓸어가 주길 간절히 바라며 창문을 열었다. _ <농담> 중에서  


좋은 작가의 글은 그 어디에서도 무력해지지 않는다.

내가 느꼈던 감정 또는 보았던 현상을 적확하고 남다르게 구현하기 때문이다.


소설가가 할 일은
이데올로기의 무게를 벗겨내고
생의 가벼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by 밀란 쿤데라


그것이 우리가 놓치고 있던 생의 가벼움이듯 우리의 일상을 보다 쉽고 친절하게 제자리로 돌려주는 것 역시 글의 힘이기도 하다.

오늘의 글은 찻잎을 우리듯 좋아하는 글의 문장들을 음미하고, 좋은 차(茶)를 나누듯 문장을 공유하고픈 마음으로 써 내려간다.

진실된 문장을 우려 나누며, 우리가 함께 행복해지는 밤이 되길 바라며...   


▒오늘의 추천 BGM  

Aria by Eric Tingstad, Nancy Rumbel (출처: Eric Tingstad Youtube)  


*메인 이미지 출처: 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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