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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Aug 11. 2022

채집 황홀

[문장우리기] #7. 야생의 위로 by 에마 미첼

숲으로 나를 이끄는 책 <야생의 위로(에마 미첼, 2020)>는 코로나 블루 따윈 침범 못하는 자연과의 왕래이자 자연 그 자체였다.

그중에서도 '채집 황홀'의 등장은 말 그대로 황홀해 멋진 그 표현을 오래 입에 물고 있었다.


인간이 새로운 환경을 탐험하고 자원을 찾아 나서면 도파민이라는 뇌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일시적인 흥분을 느끼게 한다. 소위 '채집 황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이 채집 수렵 생활자였던 과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열매가 가득 달린 산사나무나 산딸기 관목은 조상들의 칼로리 섭취를 늘려주었을 것이며, 따라서 식용이 가능한 식물에 긍정적 반사 작용을 나타내는 것은 그들의 생존과 직결되었으리라. 그리하여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채집할 때마다 뇌 내의 보상작용이 촉진되고 그러한 채집이 습관화된 것이다. P35


작가는 자신에게 온 채집 황홀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내가 오늘날 낙엽을 주워 모으며 느끼는 기분은 그러한 본능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이 뿌듯한 감정의 진화적 근거가 무엇이든 간에, 이런 행동이 내 뇌의 화학적 균형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다. 나는 화사한 낙엽 카펫 옆을 서성이며 마법 같은 항우울 효과가 나타나길 기다린다. 햇살이 따스하다. 눈부신 빛깔들 속에서 보낸 몇 분이 기분을 돋워주어 정말로 입안에 상큼한 맛이 느껴질 것만 같다. P37


책의 저자 에마 미첼은 오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그것은 25년에 걸친 위태롭고 긴 고독의 전투였다.

그런 그녀의 탈출을 도운 건 야생의 자연이었다. 그녀 곁의 숲이 치유를 담당했다.

둘은 경계의 해침 없이 건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눈을 마주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계절의 변화는 자연과 더불어 그녀 내면의 변화도 가져왔다.

작가는 달마다 달라지는 자연의 소장품을 구경하고 기록하고 남기며 흔적을 함께 했다.

그녀의 마음이 낙관적으로 바뀌어갔다.


작가의 채집 황홀은 창작으로도 공유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첫 저서인 <겨울나기>에서 창작 활동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유익한 효과에 관해 말하고 있다. 자연을 가볍게 스케치하거나 그리는 것, 식물들로 채집 표본을 만드는 것 모두 산책 자체만큼이나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말이다.

사실 그녀의 채집을 더욱 완벽하고 황홀하게 만드는 건 그녀의 업(業)과 연관이 있는데, 그녀는 동식물과 광물 지질학을 연구하는 박물학자인 동시에 디자이너, 창작자, 작가,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  

그녀가 해변에서 찾고 모은 조개껍질과 이빨, 화석 등
관찰과 위로 가운데 그녀가 그림으로 남긴 자연들
일본에서는 심신의 상태가 안 좋을 때 숲을 찾아 나서는 것이 영국에서 약사에게 이부프로펜을 받아오는 것만큼이나 흔하고 일반적인 관습이다.   P17
주변에 숲이 있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면 투쟁-도피 반응과 연계된 교감신경계 활동이 감소하는 반면 소위 '자연살생세포'라고 불리며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파괴하는 특정 백혈구의 활동은 늘어난다. 이 같은 생화학적 변화는 한 달까지도 지속되었지만, 연구 대상자들이 도시에서 지내는 경우에는 이런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우리 집 맞은편의 숲을 보며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은 단지 근사한 숲 풍경을 보는 게 좋아서가 아니라 실제로 내 심신에 영향을 끼치는 물리적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P18
모든 냄새와 교감하며 온몸으로 자연에 통합되려는 것처럼 숲에 몰두한 애니의 모습은 마치 과거로 회귀하여 자기 조상인 늑대가 되려는 것처럼 보인다.   P32
나는 노루를 만나 기뻤고 다른 여러 광경을 보았을 때처럼 그들의 모습에서 마땅한 마음의 위로를 받았지만, 차를 몰아 그곳을 떠나면서 문득 착잡한 마음을 느낀다.   P81
최초의 꽃망울을 목격하는 것은 나에게 한 해의 중요한 분기점이다. 그것은 몇 주 동안 알싸한 향신료의 맛을 못 본 뒤에 먹는 카레와도 같고, 애매한 3월의 햇살을 받으며 그해 최초로 야외에서 마시는 차 한 잔과도 같다.   P86
활짝 핀 등나무꽃과 햇살에 잠긴 꽃이 만발한 정원을 묘사한 단락이 내 마음에 향기로운 연고처럼 작용한다.   P89
우울증을 제어하려면 꾸준한 경계가 필요하다. 자연 속에서의 산책, 창의적으로 보내는 시간, 그리고 홀로 있을 때 곁을 지켜줄 호박색 털북숭이 친구라는 방어용 무기를 갖춘 일상적 전투 말이다.   P116
나는 그곳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블루벨을 바라본다. 햇살과 풍요로운 꽃들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뇌세포에 이른다. 최고로 맛있는 초콜릿 케이크나 집에서 만든 짭짤한 감자칩을 먹을 때 같은 강렬한 만족감이 퍼져 나간다. 마치 내 마음이 이 광경을 먹어 치우고 거기서 양분을 취하는 것 같다.   P168
발부리 바로 앞에 내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던 식물이 있다. 애기풀이다. 새로운 전율로부터 마음이 진정되자 나는 애기풀이 백리향과 요정아마에 뒤섞여 사방 몇 미터에 무더기로 자라나 있다는 걸 깨닫는다. 키는 7센티미터 정도이며 참제비고깔처럼 푸르고 카리브해 상공처럼 맑은 외꽃잎 안에 흰 공작새 꼬리털처럼 가느다란 술 모양의 내꽃잎이 있다.   P187
납작하고 섬세한 프랙털 구조의 꽃차례는 측면에서 보면 타원형에 가까우며, 태양을 향하는 해바라기와 달리 각각의 꽃송이가 조금씩 다른 각도로 피어난다. 그래서 야생당근꽃 무더기는 조그만 꽃송이들의 은하로 가득한 밤하늘의 일부분을 확대한 것처럼 보인다.    P212


지금 이 기분을 붙잡아둘 수 있다면,
나를 에워싼 야생식물과 곤충 들로부터 느끼는
이 절대적 환희를 병에 담아두었다가
우울증으로 쓰러져 집을 나설 기운이 없을 때
열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_P217



거짓 없는 자연과의 근사한 소통은 말이 필요 없는 눈 맞춤이었다.

그녀가 경험하는 환희의 전율을 나 역시 그녀의 글을 통해 함께하며 행복하고 사랑했다.

야생의 위로는 그 누구에게도 공평하게 진실된 마음이므로.


▧ 오늘의 추천 BGM

Hope by Arlo Parks (출처: Arlo Parks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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