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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Aug 26. 2022

나중 아닌 그저 지금

나의 영원한 별

할머니 봉안당에 새로 걸어둘 리스를 맞췄다.

여러 꽃집을 찾아 고른 고운 컬러의 리스였다. 직접 본 리스는 봄을 두른 듯 연연한 꽃들이 사각틀을 장식하고 있었다. 고운 걸 좋아하셨던 할머니도 분명 마음에 들어 하실 거라 생각했다.

오랜만에 만난 사진 속 할머니는 웃고 계셨다.

할머니 생신 때 온 가족이 모여 남긴 사진이다. 할머니가 어느 때보다 든든해하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부모는 자식이 힘이라는 말이 정통하는 순간이다.  

다만, 그때까지만 해도 할머니가 이렇게 가실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남은  힘없이 무거운 현실이었다.


언제부턴가 할머니를 비롯해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하게 되면서부터 나는 '나중에'라는 말을 싫어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믿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겠다.

'나중'은 아무 힘도, 약속도 존재하지 않았다. 통제 불가능의 기약일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자는 주의도 같은 경험에서 비롯되는데, 여행이든 맛있는 음식이든 좋은 건 미루지 않는다. 더욱이 부모님과의 시간은 더더욱 그렇다.

기회는 '다시'라는 기약이 없고, 시간은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사진 속 할머니 얼굴을 쓰다듬으며 우리가 만나면 처음으로 늘 했던 깊고 따뜻한 포옹을 기억했다.

보드랍고 포근했던 할머니의 품이 느껴졌다.

내가 커 가면서 할머니와 나의 포옹은 내가 할머니를 안아 드리는 자세로 바뀌어 갔는데, 내가 자라는 동시에 할머니가 작아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서글픈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영원한 나의 별이자 대장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할머니가 떠나신 후에도  힘을 받은 일이 있었다.


몇 달 전 할머니를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

앞서 달리던 차가 좌측 도로로 진출하려다 5미터 간격도 채 남겨두지 않고 급정거를 해버린 거였다.

조심하라는 소리에 급브레이크를 밟고 서니 앞 차와의 간격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신기한 건 엄마 아빠 목소리 외에 할머니 목소리도 들렸다는 거다.

앞차의 사과에도 반응할 겨를 없이 놀란 터라 진위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지금도 난 할머니였다고 믿고 있다.  

그날 큰 사고로 번지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할머니가 지켜주셨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할머니가 우리를 보고 계신다는 충만한 확신에 마음이 뜨겁고 든든했다.

무엇보다 할머니의 사랑이 그리웠다.

그날 밤 묵주 기도는 여느 때보다 길고 또 깊었다.

할머니의 사랑만큼…


★ 오늘의 BGM

Mary, Did You Know by Pentatonix (출처: Pentatonix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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