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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Aug 31. 2022

서울의 낭만

한강과 다리 사이처럼

어느 날의 하늘 색은 영락없는 캔디바다.

물구나무를 한 듯 머리 위로 바다가 한가득 떠 있다. 사랑에 빠진 얼굴로 시선은 바다에 머문다.

방금까지 길이 막히던 불편은 잊어버렸다.


출퇴근길 카멜레온 같은 하늘에 곧잘 감탄하지만, 강을 사이에 두고 달리는 것, 산다는 것에도 감동한다.

윤기를 머금은 강은 밝은 대로 예쁘고, 밤이 되어 반짝이는 다리는 표정마저 풍부하게 살아난다.

모두가 '서울의 낭만'이다.


현재 서울의 한강에는 서른 한 개의 다리가 있다.

생김도 색깔도 개성이 넘친다.

빛이 닿은 강은 다리 색에 물들어 다른 질감과 얼굴을 하고 있다.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는 돈독한 사이다.

대개의 다리는 밤에 강하지만, 내게 있어 한강철교는 낮이 더 아름다운 다리다.

올림픽 대교에서 여의도 진입 전 만나는 한강철교는 다리에 물든 강이 옥색 호수 인양 초록에 늘 취해 있다. 에메랄드 빛에 가깝다.  

1900년 준공한 서울 최초의 다리이자 철도 전용 교량으로 열차가 지나가는 정경마저 정겹다.

교량 중 3개의 선은 등록문화재 제250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반면, 서울의 야경을 책임지는 대부분의 다리는 밤이 되면 밋밋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대담해진다. 낮과는 확연히 다른 온도다.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건 동호대교와 청담대교의 불빛이다.

허리띠처럼 두른 동호대교의 ‘파랑’, 청담대교의 ‘초록’ 브이(V)는 트리의 오너먼트를 떠올리게 한다. 유광의 크리스마스 장식볼 같다. 마음도 한 여름밤의 꿈처럼 캐럴을 따라 겨울 언저리를 찾아간다. 코 끝에는 바람이 지나간 듯 겨울 냄새가 묻어난다.


덤으로 일정한 시간에 나서는 퇴근길은 원효대교에서 어김없이 만나는 비행기가 있다.

제주에서 김포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내가 대교에 진입할 무렵 몸을 낮추고 여의도 빌딩 숲 사이로 사라진다. 연달아 만나던 주간은 ‘하나, 둘, 셋’ 하면 구름 틈에서 반갑게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애정을 듬뿍 담아 제주에서 돌아오는 마음을 떠올리곤 했다. 마치 내가 둘도 없는 여행을 하고 온듯 충만한 설렘이 있었다.


오늘도 같은 애정을 느끼고, 하늘에 반하며 하루를 열고 또 마감한다.

어둠이 깔렸고, 주인공이 된 다리의 불빛이 춤을 출 시간도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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