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우주를 헤엄치다가 발견했어
혼자 간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보여줄래
내 눈앞의 아른아른 거리는 잔상들이
아름다운 내 몽상들이 누군가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세상의 것들이더라도
별거 없는 일상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누구나가 예상할 수 없는 것들을
떠올린 심상을 하얀 도화지에 써 내려가
쓸데없는 망상이라고 해도 괜찮아
내가 펼쳐놓은 환상을 기꺼이 감상해줘
나만의 꿈속을 여행하다가 발견했어
혼자 품고 있던 작은 세계 너에게 보여줄게
내 첫 일러스트 작품인 달계란은 언젠가 꾸었던 꿈의 소재였다. 평소에 깊게 잠을 못 자고 꿈을 자주 꾸는 편인데 깨어나면 어이없을 정도로 황당한 꿈이 많다.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인 꿈 역시도 너무 허무맹랑해서 웃음이 나온다. 설명을 해보자면 꿈에서 나는 2층 단독 주택에 살았고 그 주택 뒤에는 커다란 산이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친구들과 함께 그 산에서 숨겨진 계란들을 찾았다. 산에 부활절 계란 같은 알록달록한 계란이 숨겨져 있는데 내가 찾은 계란들이 폭발을 했고 우주로 날아가 우주를 떠다니는 행성이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또 쓸데없는 꿈을 꿨구나'하고 말았겠지만 그날은 유독 꿈에서 본 우주를 떠다니게 된 계란과 계란 껍데기에서 떨어진 동그라미 스티커들이 너무 귀여웠다. 이렇게 혼자만 꿈에서 보기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몇 년 만에 짐 속에서 묵혀두고 있던 타블렛을 꺼냈다. 지금은 아이패드를 사서 어디서든지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처음에는 이렇게 노트북에 타블렛을 연결해서 코렐 페인터를 사용했다. 오랜만에 잡은 타블렛 펜이 어색하고 오랜만에 열은 코렐 페인터 프로그램이 어려웠다.
결국 다시 타블렛과 페인터 프로그램에 익숙해져야 했기 때문에 그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에는 스케치를 하느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완성을 하지 못했다. 그다음 날 오랜만에 동생이 집에 놀러 와 같이 카페를 갔다. 커피와 디저트 여러 개를 시키고 나는 이 달계란 그림을 그리고 동생은 유튜브로 영상을 봤다. 지금도 집에서 작업을 하는 것보다 카페에서 하는 게 더 집중이 잘 되는데 그 시작이 아마 이때였나 보다. 그날 나는 커피를 다 마시기 전에 달계란 그림을 완성했다.
전공이자 가장 좋아하는 취미였던 그림 그리기랑 상관없는 일을 하다가 퇴사를 하고 쉬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그런지 너무나 오랜만에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림을 완성하고 보니 내가 직접 꾼 꿈속의 이미지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재가 아니어서 더 재미있고 마음에 들었다.
이 그림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어딘가에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위로라는 새로운 작가명을 사용했다. 이 달계란 그림은 WELOW라는 서명을 사용한 첫 번째 그림이 되었다. 조용한 관종이라 관심받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관심을 받으면 내심 좋기 때문에 내 그림과 취향이 맞는 사람 하나 정도는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인스타그램을 개설해 지금까지 틈틈이 꾸준히 그림을 그려 올리고 있다.
나의 오랜 버킷리스트 중에는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작가로 참여하기'가 있었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들어봤을, 만화를 좋아해 매 회마다 갔던 친구를 따라 한 번 가본 서울 코믹월드가 기억에 많이 남았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학교를 다니면서,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아주 천천히 일러스트를 그렸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그린 그림들을 계속 올리면서 팔로우하고 소통하는 다른 작가분들이 일러스트 페어를 참여한 후기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꼭 참여해야겠다는 다짐만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올해 초에 부산일러스트레이션페어의 참가신청 메일을 받았다. 날짜는 10월 7일~10일, 장소는 부산 벡스코. 메일을 받고 참여하고 싶다가도 비용이나 시간적으로 고민이 많이 됐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이것도 좋은 경험이니까 해보자!'하고 신청서를 냈다. 안일하게도 '참가비를 내면 어떻게든 준비해서 하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일러스트 페어를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1월에 사전 신청을 했고 페어가 10월부터였는데 '내일의 내가 하겠지'의 밀림의 왕인 나는 9월부터 일러스트 페어를 준비했다. 하고 있는 일이 바빠 온전히 페어만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서 퇴근을 하고서나 휴일에 틈틈이 발주 파일을 만들었다. 그래도 그동안 그려놓았던 그림들이 있어서 편집해 여러 가지 굿즈들을 만들 수 있었다. 하나하나 애정이 담긴 내 새끼들이라 그림들을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처음 참여한 일러스트 페어는 생각보다 엄청 귀여운 캐릭터를 그린 분들이 많았어서 살짝 위축도 됐다. 엄청 키가 큰 남자분이 자기도 밤하늘을 그리는데 이렇게 예쁘게 그리기가 쉽지 않다며 엽서를 사 갔고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유쾌하게 엽서를 고른 엄마와 딸, 처음에는 엽서 한 장만 사려고 했는데 너무 예뻐서 엽서, 스티커, 메모지 등을 골고루 골라 담고 친구 선물까지도 사간다고 말해주신 분, 스티커를 사기 위해 귀여운 동전지갑에서 돈을 꺼낸 꼬마 손님 등 감사하게도 내가 처음에 인스타 계정을 만들면서 생각했던 내 그림과 취향이 맞는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이번 페어를 참여하며 그동안의 내가 쌓여 오늘의 새로운 경험을 만들었다는 게 너무 설레었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냐며 내가 한 몽상의 기록들이 칭찬을 받았다.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감동을 받았다. 안 해본 것들이 많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할 때 심장이 뛰는 걸 느낀다. 아직 작가라고 불리면 어색하지만 그래도 그림을 그리며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타이틀이 하나 생겨난 것이 너무 재미있다. 다음 도전은 무얼 해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