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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Aug 12. 2021

새벽 2시


잠들기 아쉬운 밤 찾아오는
찬연하게 빛을 내는 다섯 개의 달과
만나기를 갈망하는 달맞이꽃에게

반가움으로 말을 걸어
너는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이었는지
혹시 어제 읽은 책에서 마주친 건 아닌지

잠들지 못하는 밤 찾아오는
기지개를 힘껏 켜는 검은 고양이와
밤하늘을 헤엄치는 물고기에게

설레임으로 말을 걸어
너는 어떤 노래의 가삿말이었는지
혹시 나의 산책 길에서 지나친 건 아닌지





영감의 원천


얼마 , 동생이  취향의 영화가 많이 있을 거라며 왓챠를 추천했다. 그래서 동생이 생각하는  취향이 뭔지 물어봤더니 잔잔하고 감성적이고 색감이 이쁘지만 재미없는 영화라는 대답을 들었다. 내가 자주 보는 유럽의 색감이 예쁜 살짝의 판타지가 섞인 영화나 일본의 잔잔하지만 소소한 행복이 깃든 일상 영화를 했다. 최근에 재미있게  영화는 프랑스 영화인 '버터플라이'인데 할아버지와 아이의 미묘한 캐미도 좋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장면과 눈이 시원해지는 자연 풍경이 좋았다.


영화의 취향처럼 책도 일상을 얘기하는 에세이집이나 일어날 수 없는 허구의 판타지 소설을 주로 읽는다.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에세이집도 책꽂이에 수집 중이고 '아무튼' 시리즈 중에서 문구, 여름, 메모를 재미있게 읽었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좋아하고 이적의 '지문사냥꾼'은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몇 번을 빌려 읽은 뒤 소장 중이다. 가장 최근에 구매한 소설책은 엄주 작가의 '악몽수집가'. 책들은 새로운 환상의 세계를 꿈꾸는데 도움을 주고 나도 이런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도전을 준다.


입시를 할 때 학원의 작은 방에서 아이팟으로 베란다 프로젝트의 '괜찮아'를 수없이 돌려 들으며 힘을 받은 뒤로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가삿말이 아름다운 노래들이 자리를 잡았다. 절절한 사랑의 감정의 노래나 통장의 잔고를 자랑하는 노래보다는 일상 이야기의 노래를 듣는다. 누군가가 클래식이나 뉴에이지 노래를 들려줘서 들어봤는데 가사가 없는 노래는 나의 취향이 아니었다. 기타 선율에 맞춰 가수가 보내는 편지 같은 가사의 이미지를 상상하며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내 귀에 더 맞는 듯하다.


기타를 치며 부르는 목소리를 가진 가수들의 노래는 따뜻한 산책길을 닮았다. 산책을 하며 길을 걷기보다 주변을 살피는데 시간을 많이 보낸다. 길에서 여러 오지랖을 부리며 구름 가득한 높은 하늘도 바라보고,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생긴 집들을 보며 미래의 내가 살고 있을 집을 상상도 해보고, 유유자적한 고양이도 만나며 눈과 사진으로 장면과 추억을 간직한다. 이런 사진들은 나중에 여러 상상들과 얽혀 그림의 재료가 된다.


이렇게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노래를 듣고 산책을 하며 얻은 영감들을 주로 메모장에 기록하는 편이다. 어떨 때에는 이미지를 손가락으로 쓱쓱 그리고 밑에 무얼 표현했는지 간단히 적어놓는다거나 마음에 드는 노래 가사나 책에서 발견한 문장을 적어놓는다. 추천받은 영화나 책의 제목도 수두룩하다. 지금 메모장을 열어보니 총 117개의 메모가 저장이 되어있다. 이 중에는 아직 그림으로 꺼내어지지 못한 아이디어들이 대부분이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오면


이런 조각조각 난 아이디어들을 구체화시키는 데에 캄캄한 밤만큼 적합한 시간이 없다. 가장 집중이 잘 되는 시간은 새벽 2시. 노란 무드등 하나를 켜고 노래도 틀어놓지 않은 조용한 적막 속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다. 어릴 때에는 그렇게 공부하라고 앉혀놓으면 의지와 상관없이 의자에 앉아 앞뒤로 꾸벅꾸벅 졸기를 반복했었는데 말이다. 밤을 못 새우던 아이는 언제부터 새벽을 기다리게 되었을까.


아마 처음 시작은 생존형 밤새우기였지 않았을까. 고등학생 때 까지도 시험기간 마저 12시를 못 넘기고 잠을 자야 했고 억지로 밤을 새우면 학교에서 졸았기 때문에 차라리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공부하는 방법을 선택했었다. 대학교를 다니며 넘쳐나는 과제를 감당하려고 동기들과 함께 야작을 했다. 서로의 작업을 도와주고 잠깐 눈을 붙이다가 깨워주는 손에 다시 일어나 작업을 반복하며 그때 알게 된 것 같다. 새벽이야 말로 집중하며 창작을 하기 좋은 시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일에 집중할수록 내가 없어지는 느낌을 받아와서 그런지 더 퇴근 후의 나만의 시간에 집착하게 된 것 같다. 집에 들어오면 거의 밤 10시가 되는데 그대로 잠이 들면 하루가 너무 아쉽다. 30분 정도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개운한 몸과 마음을 준비한다. 집의 불을 다 끈 다음 무드등 조명만 켜놓고 아이패드를 꺼낸다. 메모장에 기록해놓은 아이디어들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최적화된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하루의 일들을 마무리하고 책상에 앉으면 그때부터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상상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좋다. 그림을 그리다가 업무를 해야 하지도 않고 펼쳐졌던 상상이 끊어지게 말을 거는 사람도 없다. 새벽의 감수성과 합쳐져 얽혀있던 여러 아이디어들이 실타래를 풀듯이 풀리는 시간. 온전히 창작에만 집중을 하는 시간이 된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들으려고 한다. 어디서 어떻게 만난 영감의 원천들이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잠들지 못하고 글을 써 내려간다. 밤에 쓰는 글은 유독 감정이 많이 들어가 감수성 넘치는 글이 되기 때문에 아침에 맨 정신으로 다시 한번 읽어보고 과하게 들어간 감정들은 백스페이스 버튼을 눌러 정리하기도 한다. 창작을 할 수 있어서 좋은 건 나의 생각이 내 머리와 마음속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밖으로 꺼내져 누군가에게 공유가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의 그림이나 글이 영감의 원천이 되고 타인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창작가의 삶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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