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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Sep 03. 2021

밤의 기운으로 자라나는


아무것도 없는 
캄캄한 밤하늘인 줄 알았는데 
마음을 기울여 바라보니 
촘촘한 별이 재잘대듯 

자라날 수 없는 
뻣뻣한 마른 풀인 줄 알았는데 
 두 손을 내밀어 만져보니 
튼튼한 잎이 뻗어 나듯 

딱딱한 씨앗을 자라나게 하는 
강한 땅처럼 흐르는 바람처럼 밝은 햇살처럼 

쓸쓸한 아픔은 성장통이 되어 
싹을 틔우고 뿌리가 자라나고 잎이 피어나고 





불안은 나를 움직이게 한다.


나는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다. 대학교 4학년 때, 교생실습을 가서는 첫 수업이 끝나고 나서 반 아이들에게 내가 너무 떨어서 자기들이 오히려 더 떨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긴장을 했다. 긴장을 하면 목소리가 요동치고 손에는 식은땀이 흘러서 티가 안 날 수가 없다. 평소에도 몸에 힘을 너무 많이 줘서 어깨가 아픈 고질병이 있을 정도이다. 긴장을 하지 않고 싶어서 신경 써서 힘을 빼지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또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있는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나만의 기준이 확실한 완벽주의자이다. 어린 시절 동생이나 이른바 엄마 친구 아들과 지겨울 정도로 비교를 많이 당했고 잘하는 것을 칭찬받기보다는 못하는 것으로 혼나기 일쑤였다. 엄마한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을 사다 주면서까지 칭찬을 고파했던 안쓰러운 경험도 있다.. 엄마는 나에게 칭찬과 격려보다는 욕하고 때리고 깎아내리는 등의 언어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을 많이 가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못하는 것에 대해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힘을 주며 살아가는 어른이 되었다.


청소년 상담을 공부할 때 선생님은 나에게 '고아'같다고 말했다. 그때의 나는 누군가를 전혀 의지 하지 못했다. 기댈 곳이 없어서 혼자 버텼고 다른 사람들에게 흔쾌히 도움을 주는 것에 비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너무 불편했다. 가만히 있으면 우울한 생각에 잠식되는 듯 해 계속 무언가를 찾아서 하게 되었고 일을 할 때에는 인정받기 위해 아득바득했다. 그러니 마음에 병이 안 날래야 안 날 수 없고 청소년을 상담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상담이 필요한 상태가 되었다. 가만히 있으면 호흡을 하듯 자연스럽게 눈물이 넘쳤다.


고아처럼 살아온 스스로에게 부모의 모습을 발견할 때만큼 힘들었던 적이 있었을까. 부모로 인정하지 않고 싶은 사람에게 받은 영향이 내 생각과 행동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도 긍정적인 면을 찾자면 어린 시절의 상처가 내가 대안학교 교사로 일한 시간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음이 어려운 청소년들, 올바르게 자라지 못한 어른의 잘못으로 마음이 고장 난 어린 시절의 나와 같은 청소년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 아이들을 만났을 때 내 어린 시절을 마주하는 것 같아 버거웠던 적도 있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나도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나에게 아이들은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엄청나게 큰 버팀목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은 내가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기 전 망설이는 순간들에 '하면 하지'라는 마음을 먹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결국 시련의 끝에 만개하리.


내면의 우울함은 성장통이 되었다. 혼란스럽던 자아가 차곡차곡 정리되는 시기가 있었다.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데 겉으로는 괜찮다를 반복하고 계속 괜찮은 척을 노력했던 자신을 똑바로 마주 보고 외면했던 연약함을 마주하게 되었다. 감정에 솔직해지고 어린 시절의 나를 위로해줬다. 아무도 그 아픔을 알아주지 않았어도 나는 스스로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직도 무언가를 하기 전에 불안한 마음은 있다. 불확신함으로 오는 불안임을 이제는 어느 정도 알았기 때문에 상황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기록의 습관이 생겼다.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으면 새로운 불안함이 계속 생겨난다. 어제의 한 일을 기억하고 오늘의 할 일을 기대하고 내일의 할 일을 기록한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란 느낌이 들게 한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불완전한 자아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이웨이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성격이면 살기 편하겠지만 스스로 그럴 수 없는 사람인 것을 안다. 나를 통해 누군가가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게임에서 포션을 마시면 체력이 차오르듯이 만족감이 차오른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괜히 더 해야 할 일을 찾아 나선다.


오늘을 하루하루 쌓아 만든 언젠가의 내가 또 다른 누군가의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어서 새로운 문들을 두드린다. 이제는 실패를 두려워하고 싶지 않다. 씨앗이 썩어져야 싹이 트고 활짝 피어나고 지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건 씨앗 혼자 있을 때에는 절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 잘 견뎠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온전히 마주하자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았던 나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들여다보고 다가와 말을 걸어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껍데기를 깨고 자라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힘과 노력으로는 안 된다. 흙이든 바람이든 햇빛이든 자연의 섭리 안에서 공존하는 무언가가 곁에 있어야 한다. 나 역시도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지만 누군가에게도 의미 있는 존재로 오늘을, 내일을 살아가기 위한 오늘을 기록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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