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로 Jul 02. 2021

기억의 빨강



당신에게 빨강은 어떤 색인 가요?

다가갈  없는 우아함인가요 
갖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나요 
혀끝에 남은 달콤함일까요

중독이  만큼 향기로운가요 
무서울 정도로 뜨겁지 않나요 
마음에 새겨진 아픔일까요

지금 떠오르는  빨강은 
어떤 사연과 추억이 얽혀있나요

당신에게 나는 어떤 의미인가요 
과연 어떤 빨강으로 기억될까요?






모두 다른 빨강의 기억


빨강은 너무나도 매혹적인 색이다. 어두워지면 한없이 고급지고 채도가 높아지면 낭만적이고 사랑스러우며 뜨겁고 정열을 상징하는 색이다. 양면성과 다중성을 가진 색답게 위험과 경고, 권력을 상징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사랑과 생명의 색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롱한 무지개를 시작하는 색이고 다른 색들과 함께 있어도 강렬하게 이목을 끌기 충분한 색이다.


화장을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하늘 아래 같은 색조 없다.'라는 너무나도 유명한 밈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빨간색이 있고 이 빨강을 표현하는 바알간, 뻘건, 불그죽죽, 불그스름, 발그므레 등등의 많은 단어들이 있다. 주황빛 빨강, 분홍빛 빨강, 푸른빛 빨강 등 스팩트럼이 넓어 사람마다 어울리는 빨강의 색이 다른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빨강은 채도가 높고 주황빛이 살짝 도는 빨강이다.


입시 준비를 했을 때 지겹도록 많이 그렸던 신라면 봉지와 코카콜라 캔을 칠 할 때에도 주변의 사물과 전체 그림의 분위기에 따라 주황색이 도는 빨강으로 표현할지, 분홍빛이 도는 빨강으로 표현을 할지를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같은 빨강이어도 그 그림 안에서 어떤 계열의 빨강인지에 따라서 그림의 분위기가 달라져서 빠른 시간 안에 선택을 하고 붓질을 했어야 했다. 나는 주로 주황색 계열의 빨강을 선택했었는데 분홍색을 잘 쓰는 친구의 그림은 딱딱한 입시 수채화였음에도 좀 더 신비롭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났던 것 같다.


이렇게 같은 색이 하나 없고 표현이 다 다른 것만큼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초등학생들과 '서로 다름을 인정하기'라는 주제로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눈을 감고 주머니 안에 든 물건을 만진 뒤 그 느낌을 쿠키로 만들어 보는 활동이었다. 거의 매일을 붙어있다시피 하는 아이들인데도 지렁이 젤리를 만져보고 폭신폭신하다, 물컹물컹하다, 맨들맨들하다 등으로 다른 느낌들을 이야기했고 그 결과물도 고양이, 식빵, 꽃 등 다양한 형태로 시각화해졌다.


같은 일을 겪더라고 기억하는 것이 모두 다르고 같은 것을 보더라도 느끼는 것이 다르고 같은 단어를 보더라고 연상시키는 것들이 다 다를 것이다.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빨강은 어릴 때 직접 수족관에 가 데려온 동그란 배가 매력적이었던 금붕어이다. 이처럼 어떠한 것도 정답은 없고 '빨강'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도 각자의 사연과 추억이 얽혀있는 물건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빨강이 어떤 것인지 과연 내가 생각하고 경험한 빨강이랑 어떤 부분이 비슷할지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고 관심이 많다.





예민함의 다양성


나는 예민하다. 그리고 내 예민함을 인정하기로 했다. 예민한 것은 다채로운 경험을 하게 도와주기도 하며 세상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피곤하게 살아가게도 한다. 어릴 때에는 목욕물이 조금만 차가워도 뜨거워도 유난을 떨었고 사회적 민감성이 높아 주변의 눈치도 과하게 보고 스트레스에도 취약해 자주 두통과 두드러기가 다녀갔다. 아직도 사람을 만날 때에는 관찰하고 유심히 보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그 상황의 분위기나 상대방의 표정 등을 민감하게 느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만 만나고 나면 지쳐서 그만큼의 혼자 휴식하고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은 스스로를 알아가고 주변을 확장하고 정리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하며 발견한 내 특징 중 하나는 자기의 힘과 위치에서 강압적으로 자기의 생각이 맞다는 식으로 강요하고 내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과는 대화를 섞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고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에 좋아하는  '편한 분위기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듣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엮여보고 싶어 같은 주제를 가지고 사진을 찍고 글을 써보는 소모임을 기획하고 진행하게 되었다.


첫 번째 주제는 '음식'이었다. 나는 비린 맛에 예민해 해산물과 풀 비린 맛이 나는 채소를 못 먹는다는 이야기를, 다른 모임원들은 구연동화처럼 의성, 의태어로 꾸며서 쓴 식사 습관, 좋아하는 음식이 건강에 좋지 않아도 아파하면서 먹기, 최애 음식을 너무 자주 먹어 살이 쪄 그 살을 빼기 위해 식욕을 참으며 하는 다이어트, 생존을 위한 먹기 등의 이야기들을 다양한 형태로 적어냈고 관련된 서로의 경험을 자유롭게 나누었다. 특히 구연동화처럼 표현한 모임원의 이야기는 내가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의 방식이라 흥미롭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예민함은 세상을 쉽고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그러려니 하는 부분을 불편해하면서도 상대방이 내가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단어나 내용을 순화시켜 말하기 위해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결국 실행하기도 전에 상상으로 진작부터 지치게 된다. 그리고 내 관찰이나 과거의 경험으로 상대를 예상하고 판단하려 할 때도 생긴다. 내가 아는 빨강만이 전부가 아님에도 정답이 없는 것들을 두고 정답을 제시하려고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다 결점이 있고 이해받고 존중받아야 하는 상태가 있다고 생각해 오히려 정답을 정해두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젊은 꼰대가 되고 싶지 않다. 이런 숨겨지지 않는 예민함을 가지고도 주변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는 건 내가 신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그 결정을 하고 그런 신념을 갖게 된 데 까지는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이 바탕이 되었을 거라는 이해와 존중이 있어서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했을 때 그래도 이 사람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존중받았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고 회자되고 싶다.




이전 04화 새로운 사계(新四季)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