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로 Jan 18. 2021

새로운 사계(新四季)



하늘의 나는 새
바람을 타고 살랑거리는 꽃내음
싱그러운 풀잎과
손가락 사이로 들어차는 햇살
발가락을 간지럽히는 몽글한 파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볼 마음의
여유가 없기에
작은 화면 안에 머무는 하루의 시작과 끝

사이의 따스함 없이
주저하게 만드는 차가운 화면
살아있는 것들을 느끼고 싶어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잠시 손에 쥔 것들을 내려놓고  
발걸음을 움직여
무지갯빛 찬란한 비눗방울에 담아 보내

손위의 차가움 아닌
살아있는 것들의 온기를 찾아
파도 햇살 풀잎과 꽃내음
바람의 날갯짓 느끼고 싶어


무지개를 찾아 나서자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자






하얗게 불태워버린 번아웃


2021년이 되며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 햇수로 벌써 6년이 지났고 여러 직장을 갖으며 일한 지도 그만큼이 지났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참 다양한 일을 했다. 일을 할 때에는 평소보다 더 신중하고 예민하고 집착이 강한 편이라 좋아하는 일에 꽂히면 워라벨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파고들었고 그 일에 흥미를 잃은 후에는 쏟아부은 시간과 열정이 무색할 만큼 마음을 접어버렸었다. 


졸업하고 바로 일하게 된 대안학교, 교육기업의 강사, 미술학원 전임, 그 사이의 작은 알바들까지 매 순간 열심이지 않은 적 없었다. 특히 첫 직장이었던 대안학교에는 그땐 그곳이 내 하루의 전부였을 정도로 애정을 쏟았다. 학생들의 성장을 경험하며 함께 나도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의 희열과 처음에는 삐그덕 댔던 동료들과의 합이 점점 맞춰져 앞으로 함께 나아가는 느낌을 받았을 때는 정말 모든 순간이 완벽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완벽한 것은 없었고 학교에 새로 온 교사들과 기존 교사들 간의 마찰로 학교의 분위기는 어려워졌다.


그 과정에서 도무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고 학교에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다가 결국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었을 때는 병원에서 화병 진단을 받았다. 평소에도 민감했던 감각들이 예민함의 끝이 달해 거슬리는 것 투성이에 잠을 잘 때 조금만 밝아도, 조금만 소리가 들려도 잠을 못 자고 잠을 못 자니 더 예민해짐의 반복과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나오는 등 좋아하고 애착하던 일이 망가졌을 때의 상실감으로 오는 충격은 너무나도 컸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을 인정했을 때에 결국 함께 일했던 기존의 교사들과 학교를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 최대의 번아웃을 겪은 시기 었다. 너무나 이상적이었던 직장이 점점 내가 기피하던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며 마음에 병이 생겼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큰 법이었다. 무책임한 데다가 일까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과 합을 맞추는 것은 너무 힘들었고 출근을 해서부터 퇴근하는 시간까지가 전쟁터 같았다. 일을 그만두고 한 달은 아무것도 하기가 싫고 할 수가 없었다. 거의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침대 위나 좁은 방 안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모든 걸 하얗게 소진해버린 후에는 어디론가 다 놔버리고 떠나고 싶고 마음에 들던 것들도 다 거슬리고 그러려니라는 단어는 인생에 존재하지도 않게 된다. 지치면 마음 깊이 굴을 파게 된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곱씹고 더 많이 생각한다. 아마 내 마음속 깊은 한편에는 출구가 너무 작아 찾기 힘든 굴, 미로처럼 꼬이고 얽혀서 풀 수 없는 굴, 남을 미워하고 탓하는 마음이 가득한 굴, 온갖 극단적인 생각들이 떠다니는 굴 등등 매워지지 않은 엄청나게 많은 어두운 굴 투성이 일 것이다.





자연에 살어리랏다


좋아하던 일에서 마음을 서서히 멀어지게 하는 상황들에 지칠 때마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산으로 들어가고 싶다'이다. 나에게 산은 일종의 마음의 도피처이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이며 흘러가는 구름을 볼 수 있고 꽃냄새를 맡고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곳. 답답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곳. 너무도 큰 자연 안에 내 존재를 느낄 때 그 자연의 섭리가 무색하게도 하루하루 살아가려고 아등바등 버티고 힘쓰는 내 모습이 참 부질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퇴직을 앞두고, 학생들은 졸업을 앞두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기차여행을 떠나 본 여수 바다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많은 직장을 거쳤지만 아직도 대안학교에서 일했던 때가 그리운 거는 20대 중반의 일과 사람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넘쳤던 나 스스로에 대한 그리움이겠지.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때만큼의 열정을 못 쏟을 것을 알아서이기도 하고 지금도 연락하는 어엿한 어른이 된 학생들과 동료들 같은 인연을 또 어디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는 일이니 말이다.


지금의 나는 교사도, 강사도 아니고 디자인과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는 회사원이자 디자이너이고 작가이다. 새로운 직장은 진짜 하나하나 다 새롭고 배워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았다. 직업 특성상 사람을 만나는 시간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작업을 하는 시간이 너무나 많아졌는데 물론 그렇다고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않게 된 것은 아니다. 세상은 이해 안 되는 일 투성이이고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며 나는 걱정이 너무 많아서 걱정인 스트레스 취약체이다. 그래도 20대 중반의 나보다 조금 더 어른이 된 지금은 이상적인 기준을 낮추고 주변과 타협하고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면서 생각이 많아질 때는 떠나고 싶은 자연 풍경을 찾아본다. 차가운 모니터 화면에서의 한계를 느낄 때에는 주말에 기차표를 끊고 떠나기도 한다. 그렇게 떠난 익산 어느 공원의 이름 모를 나무, 대천 바다의 파도와 집 앞 산책로의 흐드러지게 핀 벚꽃, 일이 하기 싫어져 그냥 밖에 나가 걸으며 본 새우튀김을 닮은 구름까지 그 순간들을 찍어놓은 사진들을 보며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니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졌다.


누군가는 재미없는 산골짜기보다는 그래도 도시가 더 살기 좋고 편하다고 한다. 유년기를 산과 들, 논과 밭이 둘러싼 곳에서 보내서 그런지 자연은 나에게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내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는 동네 어린아이들이 거리낌 없이 찾아오는 그런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마음이 따뜻한 아름다운 할머니 었으면 한다.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 그곳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고 있겠지.




이전 03화 아날로그를 그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