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너덜 해진 공주님 종이인형도
요술봉 휘두르던 변신 마법소녀도
스티커를 모으려 먹었던 봉지빵도
친구들과 돌려보던 흑백 만화책도
뒤통수가 뚱뚱한 테레비 모니터도
재롱잔치 모습이 담겨진 비디오도
좋아하는 노래의 카세트테이프도
천 가지 게임이 들어있던 게임 cd도
손가락 사이로 들어차 오는 아련한
달빛 같은 추억이 잊히지 않도록
몇 번을 덧칠하고 수없이 써 내려가
바래진 색들이 다시금 선명해지게
솔직하고 순수했던 있는 그대로의
그리움이 가득한 그때의 시간들에
설렘 안고 건네는 내 손을 잡아줄래
조금 좁더라도 옆자리를 비워 둘게
내 학창 시절은 만화채널인 투니버스의 전성기였다. '아즈망가 대왕', '정글은 언제나 맑은 뒤 흐림', '신의 괴도 잔느', '다다다', '학원 앨리스' 등 그때 좋아했던 만화들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밤을 새도 모자랄 거다. 그보다 더 어릴 때에는 일요일 아침마다 했던 '디즈니 만화동산'을 매주 기다렸다. 엄마한테 끌려 일어나 학교 가는 차 안에서 잠이 깰 정도로 아침잠이 많던 아이였는데 일요일 아침만 되면 혼자 일어나 '디즈니 만화동산'의 오프닝을 기다릴 정도로 만화를 좋아했었다.
이렇게 만화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산 나의 인생 만화는 '달의 요정 세일러문'이었다. 이때가 아마 초등학교 입학할 때쯤이어서 입학 선물로 나는 빨간색 세일러문 가방을, 동생은 분홍색 세일러문 가방을 선물로 받았던 기억이 난다. 세일러문 종이인형을 가지고 놀았고 동생과 같이 쓰던 이 층 침대의 이불에도 엄청 크게 세일러문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이불이 너덜너더해질 때까지 덮고 잤고 너무 낡아 버려야 했을 때는 울기까지 했다.
내 그림의 처음 시작도 만화 캐릭터를 따라 그리는 거였고 중학생 때는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만화책을 돌려보는 낙으로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을 버텼다. 고등학생 때는 입시 때문에 활동은 안 했지만 만화부 소속이었다. 엄마랑 동생이랑 집 앞에 생긴 만화책방에서 '유리가면'과 '꽃보다 남자'를 빌려서 돌려보고 수다를 떨었고 만화책방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생겼을 때는 같이 속상해했다. 학창 시절 내내 나의 취미는 항상 그림 그리기였고 장래희망은 일러스트레이터였다.
나에게는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들이 어쩜 가능할 수도 있다고 믿었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한 세계. 내 학창 시절은 기대했던 것보다 재미없는 일상의 반복이었기 때문에 뭔가 특별한 것들이 필요했나 보다. 똑같이 학교를 다녀도 가방 안에는 변신할 수 있는 열쇠가 있고 말하는 고양이와 같이 이야기를 하며 집에 오니 초능력을 쓰는 아기가 방안을 떠다니고 있다면 하루하루가 더 재미있겠지. 상상은 자유니까.
머리가 크고 나서는 이런 상상조차 다 부질없다고 생각했지만 원하던 원치 않던 내 머릿속에는 상상과 환상을 넘어선 몽상과 망상이 가득했다. 생각은 끝이 없었고 쓸데가 없었기 때문에 가끔 현타가 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상상할 수 있는 힘이 나를 즐겁게 한다. 상상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하고 재미없을까.
어린 시절 버섯공장을 하던 우리 집에 일하러 오던 삼촌은 HOT의 음악 테이프를 틀어놓고 일을 했다. 카세트테이프는 영어공부 용으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 노래가 나오는 삼촌의 카세트테이프는 엄청난 신문물이었다. 삼촌이 공장을 그만두면서 놓고 가 가끔 플레이어에 넣어서 들었던 그 테이프가 인생 첫 가요 테이프라면 내 돈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산 카세트테이프는 시내에 있는 음반매장에서 산 동방신기의 'Rising Sun' 앨범이었다.
지금은 더 크고 얇은 TV 모니터가 나오지만 디즈니 만화동산을 봤던 우리 집 TV는 크기는 작으면서 뒤통수가 엄청 크고 무거웠었다. 방송이 없을 때 나오는 화면조정 이미지에 아쉬워하고 가끔 안테나 고장으로 지지직거려서 아빠가 지붕 위로 올라가서 고쳐주었던 그 TV에 연결된 비디오 플레이어로 가족끼리 다 모여서 영화를 봤었다. 고모네 집에 놀러 갔을 때 고모가 찍어준 비디오나 유치원 재롱잔치 영상, 엄마가 좋아했던 백설공주와 이웃집 토토로 만화를 보고 너무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컴퓨터나 모바일로 방송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좋아하던 만화도 그 시간만을 기다려서 봐야 했어서 만화잡지에서 오려낸 투니버스 편성표를 항상 지갑에 넣고 다녔다. 다시 볼 수 없지만 그 시간만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보고 다음 내용을 기대하던 시절이었다. 생일선물로 받은 새천년 게임을 동생과 서로 하겠다고 싸우기도 했었고 플래시 게임과 영상이 유행을 해 종이로만 하던 옷 입히기 게임을 컴퓨터로 할 수 있게 돼 게임을 기다리는 로딩 화면에 설레어하기도 했다.
지금은 무선 이어폰으로 선 없이 휴대폰에 연결해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엄마가 일본어 공부를 한다고 사온 작은 휴대용 카세트테이프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산 삼성의 노란색 MP3는 인생 최대의 고난 중에 하나였던 입시미술을 견딜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존재였다. 그 MP3는 슬프게도 이사하면서 잃어버렸지만 그다음에 산 애플의 휠이 돌아가는 MP3는 아직도 가지고 있고 여행을 갈 때는 꼭 가져가는 물건이 되었다. 아직도 못 버리고 가지고 있는 느린 게 당연했던 시절의 물건들은 그 시절의 향수를 일으킨다.
아날로그에서부터 디지털의 변화를 살면서 모두 경험했던 세대라 바쁘고 바쁜 현대사회에서 버퍼링을 기다리던 진정한 인내의 시간들이 그립기도 하다. 조금만 느려도 바로 종료나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는 요즘, 왠지 느리지만 여유로웠던 그때가 돌아오지 못할 걸 알아서 더 그런 듯하다. 가끔씩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하며 상상력에 힘을 실어준 추억의 물건들이나 그 흔적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 그리움들과 함께 자라온 덕분에 나는 오늘도 더 많은 상상을 하고 상상을 그리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