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마추어리 Aug 27. 2024

[행복한 크리스마스 만들기] 8월에 빌어보는 소원

12월의 직장인, 8월의 백수. 그 사이에서 느낀 소회.

행복한 크리스마스 만들기


행복한 크리스마스 행사 시간이 뒤집혔을 때

모니터를 성급히 끄고 사무실 불을 끄고


꼬마전구 잔잔히 영근 나무 아래

전깃줄 장식하며 비비는 손을 보았네


모든 반짝이는 것 뒤에는 손이 있다


그러네, 연말이네


우수수 줄지어 선 침엽수를 생각하다

칸칸이 빛을 내어 기어코 정박의 네모를 완성하는 

모처 고층 빌딩 사무실을 보았네


모든 빛나는 것 안에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집결시간에도 변동이 있나요?}

울리듯 울리는 메신저, 텍스트 그 안에도

사람이 있다


어쩌면 내가 지나친 나무 뒤의 혹은 사무실 안의

혹은 나처럼 담배냄새나는 버스에서 

뜻도 없이 덜컹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창 밖에 줄지어 흐르는 헤드라이트

야경? 은하수?

아니? 앞차도 신호등도 간판도 네비도

사람인 줄도 모르고 좇아가는 까마귀 떼 아닌가

이렇게 빛나는 게 다 사람인 줄도 모르고


{넵. 오전 메일은 무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죽은 눈으로 톡톡 톡톡 노란빛 말풍선 안에

행복한 크리스마스 행사 담당자가 있다.


숨어도 숨겨지지 않는 손과

담당자와 담당자와 담당자와

까마귀와 빛과 까마귀와 빛이 만드는


어두워서 추워서 반짝이고 따뜻한

행복한 크리스마스





동네를 설렁설렁 걷는 백수의 마음으로 메모 어플을 켜서 지난 글들을 둘러보다가 이 시를 발견하고는 잠시 숨이 턱 하고 막히었다. 좀처럼 시가 써지지 않는 여름에 양질의 글감을 발견해서 행복하기도 했지만, 노동의 기쁨과 슬픔을 한껏 담아낸 그 시절의 감정이 떠올라서다.


크리스마스 행사를 준비하며 야근을 하고 나오는 길에 목격한 장면이 있다. 어느 겨울의 공원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광화문 인근에는 특히나 박물관 앞 넓은 부지나 청계천, 정동길이 있어서 저마다 꼬마전구로 멋을 낸 가로수가 즐비했다. 당연히 그것을 만드는 손길이 있겠지만 그것에 대해서 한 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다. 그러니 그들의 노고에 대해서는 더더욱 몰랐다.


따뜻하게 껴입은 아저씨는 건물 외벽과 나무 사이의 좁은 틈에 쪼그려 앉아 장갑도 끼지 않고 빨개진 손으로 겨울바람을 참아내며 전구를 앙상한 나뭇가지에 얼기설기 엮고 있었다. 그 틈에 내가 퇴근한 것이 소문이라도 났는지 '집결 시간에 변동이 있냐'는 거래처 카톡이 쏟아졌다. 나는 그가 나무를 정성스레 꾸미는 그 장면이 하도 인상이 깊어서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추운 바람을 버티고 있는 것은 그와 나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무실 불이 다 켜진 광화문 빌딩 숲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구남친, 현남편을 만나고서도 내 손은 쉴 새가 없었다. 거래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장면을 당장 시로 적어야겠다 싶어서 서둘러 버스를 타고 그 안에서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허벅지에 힘을 주며 홀린 듯 이 시를 적었다. 


모든 빛나는 것들 뒤에는 사람이 있다. 

이 한 문장이 그 맘때는 왜 이리 와닿았는지. 아마 연말 분위기를 즐기려고 여기저기 빛나는 것들이 워낙 많아서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더불어 그것을 주말밖에 누리지 못하고 평일에는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 조성에 한몫하며 야근을 자처하는 우리 노동자의 모습이 칼바람처럼 내 눈과 마음속에 훅 하고 불어왔던 것 같다.


시는 일정 부분 자조하고는 있지만 지금 되돌아보니 꽤나 아름다운 광경이다. 아마 그맘때쯤 덜 바빠서 이 작품을 바로 포스팅할 수 있었다면 이 본문의 온도와 내용이 크게 달랐을 것 같다. 허나 일을 관두고 여름밤에 연천으로 별을 보러 놀러 다니는 지금 글을 쓰니 감회가 새롭다.


지금 내 손은 완벽한 백수다. 백수라는 단어는 손을 통 쓰지 않아서 뽀얀 것을 형용하는 것일 테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으니 운전도 배우고 소설도 나눠서 올려보고, 놀러 다닌 내용을 블로그에 열심히 쓰기도 한다.


완전히 반대편에 서서 생각해 본다. 12월의 크리스마스 시를 8월에 다시 읽어보면서. 야근을 자처하던 직장인이 아니라 하릴없는 백수가 되어서. 위에서 한 말과는 다르게 지금의 나도 여전히 반짝이고 있는지. 아니면 반짝이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대답은 예스다.


얼마 전 올린 [동백의 대로]에도 비슷한 풍경을 적어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동차 뒷면의 빨간 불. 그걸 멍하니 바라보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는 사람들. 운전도 운 자도 몰랐던 그때의 나는 도심의 다른 빛까지 바라보며 인간들 까마귀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었다. 사는 세상이 뒤집혔어도 여전히 나는 나다. 생각하는 나는 그대로였으니 여전히 나는 그때 빛났던 그 사람이다.


당포성에서 별을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소원을 빌었다. 구름이 끼고 보름달이 머지않은 날이라 별이 많이 보이진 않았지만 육안에 어렴풋한 점이 하나라도 더 보일 때마다 빌었다. 퇴사하고 나서 진행한 작은 프로젝트들, 그것들이 성공하게 해 주세요. 무더운 7~8월 더위를 무릅쓰고 적어낸 소설과, 제출한 공모전 제안서가 잘 되게 해 주세요. 추석이 있는 9월, 이제는 직장인이 아닌 멋진 프리랜서로서 유의미한 수확을 하게 해 주세요. 그래서 내가 답도 없이 노는 백수가 된 게 아니라 보란 듯이 성공하려고 퇴사한 사람이 맞을 수 있게 해 주세요.


크리스마스에 산타에게 갖고 싶은 선물을 간절히 비는 아이처럼 다시 한번 바래본다. 


작가의 이전글 [동백의 대로] 서로의 길을 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