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살기 시로

(09. 나는 우리 젊음이) 청춘이 야속할 때

나만 젊음이란 티켓을 케케 묵히는 기분이 든다면.

by 아마추어리


나는 우리 젊음이


나는 우리 젊음이

좀 더 파격적이면 어떨까 생각했다.


나의 잣대를 거침없이 들이대거나

미래나 대비라는 단어를

아예 모른다거나

코스요리를 먹고

돈을 안 낸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무책임한 사랑을 나누고

내킨다면 아무 때나 폭언을 하고

종이책과 연필로 깃발을 만들어서

남의 부동산을 내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수영장 물을 덮고 자고

이불은 거대한 터번으로

만들어 쓴 뒤에

소개팅에 나가서

소고기가 오른 식탁을

뒤엎는 것이다.


나는 우리 젊음이

사실은 그 젊음이 아니라

점잖음의 줄임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나는 그저 폭력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자아성찰을 활발히 하던 시절, 그러니까 이십 대 초반에 블로그에 적었던 글이다.


나의 젊은 시절 모토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자'였다. 나대는 사람을 혐오했고,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싫어했다.


그럼에도 내 롤모델은 프랑스 여류 소설가인 '아멜리 노통브'와 영화 레옹의 '마틸다'였다. 모두 파격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존재들이다. 타고난 성격과 이상이 이렇게 모순적일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청춘이란 말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 같기도.


아멜리 노통브를 따라 파격적인 소재로 소설 쓰기 연습을 했다. 늘 세상의 논리에 반박했고, 참신한 소재로 소설 창작 수업 롤링페이퍼 평가에서 고점을 받기도 했다. 평생 간직해야겠다고 여긴 그 종이는 당일 대학 캠퍼스에서 잃어버렸다.


마틸다를 따라 담배도 배웠는데, 똑단발머리를 하고 멋진 건물 계단에 앉아 피우진 못했다. 생면부지의 아저씨들에게 쌍욕을 얻어먹은 이후로는 꽁초가 세 개 이상 떨어진 빌라촌 골목을 찾아 헤매고, 어느 때는 화장실 마지막 칸에서 숨어 피우다가 청소 아주머니께 들켜 새빨개진 얼굴로 도망 나오기도 했다.


요즘 관용어로 표현하자면 '소심한 관종' 혹은 '방구석 여포'쯤 되는 사람이었을게다. 그러니까, 그때는 세상에 하고픈 행동이 너무 많았는데 도무지 실현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아, 자아실현이란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 내가 뭐 거창한 거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억울하기도 하고 답답했다. 그래서 청춘을 뽐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따지고도 싶었다.


성인이 되면 뭐든 내 맘대로 하고 살고 싶었는데. 내 모난 성격을 맘껏 뽐내고, 기분이 태도가 되는 명확한 사람이고 싶었는데, 그 자체를 기각당한 기분이었다. 그게 그렇게 죄였을까, 낮에는 캠퍼스 인싸였다가 밤에는 힙합씬에서 가장 유명한 래퍼의 여자 친구가 돼서 음악 좀 듣는 사람들의 뮤즈가 되고 싶었던 게?


현실은 이랬다. 편의점 야간 알바를 마치고 겨우 들어간 1교시 수업에선 조느라 바빴다. 서울과 조치원 캠퍼스 수업을 모두 듣기 위해서는 길에 버리는 시간이 더 많아야 했다. 말을 걸고 싶은 친구에게는 오히려 다가가지 못했다. 학교 앞에서 자취하며 매일 얼굴을 보는 아이들에게 나도 친한 친구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보다 덜 유명한 힙합 노래를 듣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고, 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줄 서 있으면 유전자부터 다른 예쁜 애들이 즐비했다. 졸지에 망상가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네가 예쁘지 않고 소심한 거였다고. 로망만 가득한 겁쟁이였다고. 내게 소심하고 애늙은이 같은 면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다.


세상은 무척 나쁘지도, 그렇다고 모두에게 친절하지도 않다. 미친 척하고 남 눈치 안 보고 젊은 혈기를 다 발산하고 싶어도 그게 쉽지 않다. 사회의 질서가 그렇다. 애도 어른스러운 게 좋고, 어른도 젊잖아야 좋은 사람이 되는 세상이다.


나이를 먹어봐도 똑같다.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은 꾹 참고, 하고 싶은 일은 다음으로 미뤄두고 산다. 그래도 내게 이십 대 초반은 더 애잔하게 기억된다. 아무리 바람을 쐐도 갑갑하고, 어떤 짓을 해도 성에 차지 않던 날들. 청춘이란 티켓을 나만 케케 묵히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까지.


혹시 지금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꼭 얘기해주고 싶다. 청춘이란 이름으로 뭐든 저질러도 되지만, 꼭 그게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고. 젊은 날의 충동과 치기도 아름답지만 그 어떤 강박이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누구에게도 실패한 젊음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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