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살기 시로

[숨 31] 아득바득 살겠다는 다짐

사소한 것에 목매고, 그 목에 얕은 숨을 달고

by 아마추어리

숨 31


지금부터 작정하고 살아있겠다

문명이 사라지고 지구가 갈라져도 살아있겠다

세상의 중심추를 단전에 고정한 뒤

들숨에 호기를 날숨에 아량을 싣겠다

헛된 산소도 허망한 이산화탄소도 없이

오로지 생명력으로 가득한 숨만 쉬겠다

욕망을 넘고 근심을 거슬러 태초의 내가 되겠다

눈물처럼 소주처럼 앓던 날들은 흘려 보내고

세상에 유일하게 투명한 것은

오직 내가 되겠다




문득 인생이 생존의 저주에 걸린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삶이 흘러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비상사태를 해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뇌의 힘을 좀 빼야 한다. 그럴 때마다 이런 장면을 떠올린다. 광활한 물가에서, 발목이 물에 잠긴 사람이 안간힘을 쓰며 밧줄에 매달려 있다가 지쳐서 손을 탁 놓는다. 발바닥이 폭신한 모래바닥에 닿는다. 깊은 바다인 줄 알았던 물가는 사실 얕은 개울이었던 것이다.


유명한 일화인지, 내가 떠올린 것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너무 예민하다거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고 느낄 때마다 몇 번이나 상기했다. 문제는 겁이고, 상상이고, 되레 짐작이고, 부정성 편향이라고. <한 걸음 더>라는 노래 가삿말처럼 '이 세상도 사람들 얘기처럼 복잡하지만은 않'다고.


너무 당연한 얘기일까. 31년을 살았다. 근 10년간 예민한 신경과 싸우며 부교감신경 항진을 위해 각종 명상과 관련 콘텐츠를 소비했다. 이쯤이면 밧줄을 놓는다고 내가 죽거나 세상이 뒤집어지지 않는다는 것쯤은 안다.


그럼에도 그 장면을 수십 번 복기했다는 건 아직도 밧줄을 '탁'하고 놔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늘 허무하게 첨벙이는 얕은 물가를 큰 보폭으로 휘저어 걷는 상상을 하면서도 겁이란 게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여전히 내일 있을 외근 길에 일어날 최악의 변수를 생각하고, 일정에 빈틈이 생길까 시간을 몇 번이고 체크한다.


그건 밧줄에 힘을 쏟고 애를 태우다 결국 정이 들어서일까? 미련일까? 오기일까? 고집일까? 그것도 아니면 습관일까?


사소한 것에 목매지 말며 완전한 자유인으로 살고 싶을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다. 다만 이런 나라도 여전히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하게 있으니 힘겹게 발버둥이라도 치는 거겠지,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다른 의미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자유인은 못돼도, 적어도 어둔 심해에 침잠하도록 나를 최악으로 망가뜨리진 않겠다는 마음가짐. 답답하도록 방어적이지만 어쩌면 이 지독한 고집이 나를 지켜온 힘이리라. 나약한 개인을 방치하는 세상에서 스스로를 잘도 키워냈다는 증거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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