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살기 시로

[명상] 명상하듯 나를 보며 사는 법

유리알 같은 눈으로 나를 보듯 너를 본다

by 아마추어리

명상


유리알 같은 눈으로 나를 보듯 너를 본다

닿는 초점마다 내가 되고 시선은 생(生)이 된다


이렇게 많은 장면 속에서 평생 자기를 볼 수 없다니


그래서 가만히 눈을 감고

미간에 힘을 주어 망막의 상(常)을 비워낸다

유리알에 자애가 맺힐 때까지 고요히


이따금 나를 사랑해야 하기에




다른 생물도 마찬가지겠지만, 인간은 평생 자기 모습을 보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존재라고들 한다. 거울도 핸드폰 카메라도 남이 보는 나의 진짜 모습을 담을 수 없다는 말도 있다. 이름과 비슷한 성격일까. 내 것보다 다른 사람의 것을 더 많이 쓰게 되는. 얼마 전에는 이런 외적인 요소나 이름뿐만 아니라 삶조차도 그렇게 살고 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거울을 많이 들여다보면 예뻐진다던데. 평범한 직장인인 나는 특별히 거울을 보며 시간을 보내진 않는다. 대신에 집안이나 출퇴근 풍경, 주로 상대하는 몇몇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더 많이 보고 산다. 1인칭 게임을 해본 적 있는가? 서든어택 같은 FPS게임 속 내 모습은 오직 총을 든 손 뿐이며 적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사물 곳곳을 노려보기에 바쁘다. 게임을 두세 시간 즐기고 나와서 플레이 장면을 상기해보면 내 캐릭터를 둘러싼 환경 장면만 남는다. 주체의 모습은 없다.


1인칭 시점이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개발되었다고는 해도 오래 붙잡고 있으면 어쩐지 메슥거리고 어지럽다. 그에 반해 3인칭 게임은 어쩐지 더 편안하다.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에 몇 시간 동안 공을 들이기도 하고, 게임 배경보다 캐릭터를 더 유심히 보기도 한다. 서든어택과 비슷한 유형이라고 해도 배틀그라운드는 자신의 캐릭터가 3인칭 시점으로 보인다. 내가 어떻게 숨어 있는지, 얼마나 엉거주춤하게 기어가고 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취향 차이겠지만 나는 캐릭터가 내 눈에 보여야 편안하다.


현실도 게임처럼 시점을 조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3차원 세상에 살고 있다. 1인칭 시점으로, 당장 내 앞에 맞닥뜨린 것들을 보며 하루를 산다. 일과를 마친 뒤 눈을 감고 하루의 풍경을 복기해봤을 때, 정작 내 모습은 드러나지 않는 날이 더 많다. 꼭 내 눈과 다리가 살아있는 영상 카메라 같다. 평범한 직장인의 하루를 저장하는. 감독도 나, 촬영도 나, 때로는 편집도 내가 하는데 주인공은 아닌 느낌.


한 번은 인생을 철저한 제삼자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드라마를 보면서 '사람은 멀리서 봐야 하는구나'를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가끔 답답하리만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너무 몰랐다.

"바보야, 그 사람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가야지!"

아무리 극적인 인물과 설정이어도 제삼자 입장에서 바라보니 인생이 그토록 쉬워 보였다. 그래서 일이 안 풀리고, 앞날이 막막할 땐 '갑자기 나를 관찰하던 누군가 뿅 하고 나타나서, 이런저런 것을 알려주면 참 좋겠다'라고 주절거렸다. 근데 그게 가능한가. 통 속의 뇌도 아니고.


예쁜 것만 보고 살라고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들에 과몰입해 살다 보면 나 자신을 잊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콩깍지가 씌었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만 하루 종일 들여다보면서 그 사람이 웃으면 내가 웃는 것 같고, 그 사람의 행동이 내 행동처럼 느껴지면서 자아를 잠시 잊기도 한다. 물론 아름다운 일이긴 하지만 '보이는 것에 속아 소중함을 잃'고 싶진 않았다. 그래, 이럴 때 필요한 건 1인칭도 3인칭도 아닌 명상이다.


눈을 감고 오직 호흡에만 집중한다. 어차피 내 모습을 볼 수 없다면 보이지 않는 다른 감각을 통해 나를 느낀다. 콧구멍으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 집중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바디스캔으로 정수리부터 엄지발가락 끝까지 피부의 감각을 느끼면서 몸의 형상을 느낀다. 스스로 산이 되고 물도 되어보며 잡히지 않던 마음을 느낀다. 미간 사이 저 멀리 보이는 빛에 집중하며 보이지 않는 나 자신을 느낀다.


30분 남짓의 짧은 시간에 며칠간 내 내장 하드에 쌓인 불필요한 장면들을 삭제한다. 그리고 눈을 뜨면 머리와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다. 여전히 ae카리나처럼 내 눈앞에 자아가 보이진 않아도 스스로 내가 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이 기분을 최대한 유지하기로 마음먹는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멋지고 화려한 풍경이 눈앞에 있어도 언제나 중심은 눈 밖이 아닌 내 안에 두고 살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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