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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Jan 16. 2022

(18. 어른) 되기 싫어도 돼야 하는 것

정말로 천 번은 성장해야 성장통이 사라질는지.

어른


내게 이토록

어린 면이 있다는 걸

인정했을 때


비로소 나는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른의 정의를 내리는 일은 난감하다. 만 19세 이상이 되어서 성인이 되면 어른인가? 아니면 정신적으로 어느 선만큼 성숙해지면 어른인가? 이런 주제는 꽤나 오래전부터 회자되어 온 것 같다. 특히 갓 성인이 된 대학생 때 또래들과도 주로 하던 고민들이다. 내가 그 시절일 땐 한창 유행하던 10cm의 노래 가삿말을 카톡 프로필창 등에 써두곤 했다. '어른이 된 나는 어지러워'


얼마 전엔 퇴사한 동료가 맡던 클라이언트의 신규 제안서를 작업할 일이 있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진행하는 노인일자리사업 관련 업무였다. 새로운 클라이언트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는데, 제안서 전체를 도맡아 작성하라는 부담감까지 더해졌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연차가 쌓이고 진급을 하려면 그만큼 더 대단한 일을 해야 한다. 웃기는 일이다. 그깟 대리가, 과장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지금까지는 팀장님이나 과장님이 날카로운 상황 분석과 톤 앤 매너를 정해주면 그에 맞춰 프로그램을 짜고 예쁘게 꾸미는 일만을 했는데, 제안의 서사를 처음부터 짜려니 막막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가슴이 설렜다. 남이 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 생각을 이리저리 조합해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모든 주니어급이 원하는 회사 안에서의 주체성을 지킬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야심 차게 '요즘 세상엔 어른이 없다'는 논리를 가지고 서사를 풀어나갔다. 머릿속엔 그 생각이 확고했는데 웬일인지 수치화된 근거자료를 찾으려니 눈을 씻어도 보이지 않았다. 멘토가 없다, 보고 배울 스승이 없다... 내가 그간 보고 느낀 것들은 대체 어디서 왔던 걸까. 할 수 없이 꽃보다할배, 인생술집 영상 클립에 달린 댓글들을 추적해 하나하나 캡쳐했다. 분명 나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예전 사회처럼 노인을 곁에 두고 모시는 일도 적을 뿐더러 스마트폰을 보느라, 방역수칙을 지키느라 부모님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그저 미디어를 통해 원로배우들의 노련미와 인생철학을 한두 번 엿듣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마는 것이었다.


댓글창엔 '현실에서는 이런 명언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글이 많았다. 제안서를 핑계로 <꽃보다 누나>를 여러 회 돌려보며 사무실에서 몰래 눈물을 닦던 나도 사실은 인생 선배의 위로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결국 제안서 제출일 하루 전 그 내용은 삭제되었지만 며칠간 '어른'과 관련된 상념은 떠나질 않았다. 그 제안서를 제출하자마자 바로 다음 제안팀에 투입됐는데, 신입과 인턴을 가르치면서 일을 쳐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맙소사. 둘 중에 하나만 해도 버거울 판에 두 가지를 다 하려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 쓰자면 하소연밖에 안될 테니 이 얘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겠다. 나보다 앞서 이 시기를 버텨낸 분이 계시다면 이제 막 시니어에 진입하는 주니어 직급에게 위로의 한 마디를 남겨주시길.


여차저차 스트레스에 파묻혀 지옥 같은 제안 시즌을 지내고 있는 때 마침 신경안정제가 동나버렸다. 문제는 내 손에서 뿐만 아니라 병원에도 동이 났다. 제약회사 이슈가 있다는데, 약국에서는 충분한 설명 없이 네이버에 검색해보라고 했다. 이 업계에도 말하자면 긴 사정이 있겠지, 대체약을 받아 들고 알겠다며 약국을 나왔다. 세상 참, 되는 일 없는 시기가 있다.


무기력하게 집에서 고 먹기만을 반복하다가 문득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적어둔 어플을 켰다. 벌써 열일곱 개의 시가 브런치에 올라가 있다. 이제 올릴 시도 별로 남아있지 않다. 스크롤을 죽죽 내려  처음으로 등록한 시를 읽었다. 그게  작품이었다. 사실 너무 짧고 감상에 가까운 글이라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명확한 느낌도 있다. 이미 어른이기 때문에 '어린 '이라는 표현을 쓰고 놀랐다는 얘기. 그때는 내가 진정한 어른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살았나 보다.


반면 지금의 나는 어떤가. 또다시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일을 하다 보면 하루에 수십 번씩 나의 부족한 면을 보게 된다. 앞만 보고 달리자니 그 책임과 무게가 전혀 멋져 보이지 않는다. 뒤를 돌아 후임들과 도란도란 헤쳐나가려니 그들의 '더' 부족한 점이 나를 채찍질한다. 가르쳐야지, 좋은 어른의 본보기가 되려면 네가 가르쳐야지 하고. 그런데 말이 곱게 안 나간다.


그래도 분명 몇 년이 지난 뒤에는 이 글을 보고 웃음 짓는 날이 있겠지. 그리고 그때는 어느 정도 시니어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게다. 그때는 좀 더 차분하고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세상에 어른은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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