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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Dec 22. 2021

(13. 나는 머뭇거림을 사랑한다) 우유부단한 나에게

그냥 '내 맘이다 이자식들아'라고 외치고 싶다


나는 머뭇거림을 사랑한다


세상이 반으로

갈라지기라도 할 듯

심각하면서도


세상이 한없이

기다려주기라도 할 듯

느리작거린다


머뭇거림은

후회를 전제로 한

선택적 상실의 기로


기록할 수 없는

모노드라마


세상 가장 가만한

클라이막스




"오, 이거 새로 나왔네? 난 이거 할래"

세상 발랄한 여고생 시절, 난 누구보다 '고민이 없는 사람'인줄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바뀌지 않은 장래희망이 있었고, 편의점에선 야자시간에 마실 음료를 가장 먼저 골랐기 때문이다. 망설임이나 우유부단도 앞으로 내 사전엔 없을 줄 알았다. 그래서 '난 짧고 굵게 살다 갈거야'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고 다녔다(늘 잔병치레에 골골대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무서운 말인 것을..).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인생을 'B D 사이 C'라고, 선택의 연속이라고 표현하는 지를. 어른의 선택은 편의점 가판대 앞에서 '실패해도 되는' 선택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앞으로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 쉽게 사먹을  있느냐 없느냐를 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얼마전 넷플릭스로  영화 '캐스트 어웨이'. 무인도만 탈출하면 그저 해피엔딩인줄 알았건만. 인생의 파도는 끝이 없고  순간 인생을 표류하게 하는 갈림길이다.


'무엇을 하거나 안하거나, 어디에 가거나 안가거나.'

대부분 이런 문제에 봉착했을 때 변함없는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게 어려웠다.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나는 진취적이기보다는 보수적이고 게으른 스타일이었고, 고민의 대부분은 '하기 싫다'는 데서 나왔다. 그래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세상이 보편적으로 강요하는 대로 하거나, 아니면 '내가 싫어요'라고 뻔뻔히 소리치고 하지 않아야 했다. 그런데 단순히 내 마음이 싫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결정을 하는 게 틀린 일 같았다. 결국에는 어영부영 대답을 미루다가 마지못해 끌려가서 하기 싫은 일을 해내는 식이었다.


저번주엔 드디어 올해 연간 프로젝트가 끝났고, 팀장님들께 사직 의사를 밝혔다. 다음주 중요한 PT가 끝난 후에 제출하려고 사직서도 써뒀다. 앞선 두 번의 이직경험처럼 다음 회사에 확답을 받아두지도 않았다. 다음엔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해보리라는 뚜렷한 생각도 없다. 그저 내년에도 비슷한 업무강도의 프로젝트를 끝까지 해낼 자신이 없어서 미리 해둔 결정이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하기 싫어서'인거다.


늘 바라던 현 회사 퇴직이지만 새삼스럽게도 나는 또 머뭇거리는 중이다. 이 채용공고에 자소서를 넣어말아, 좀 쉬어 말아. 또 뚜렷한 기준이 없다. 그저 '이렇게 내 마음대로 쉬어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을 뿐이다. 이젠 인터넷에 검색도 해보지 않는다. 그래봤자 잡플래닛이나 블라인드 게시글에 얻어걸려 '안된다'는 댓글만 죽죽 내리며 읽을 모습이 빤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인생인데, 결정의 기준이 '내 마음'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일까 싶다. 초등학생때 말싸움을 하다가 누가 먼저 '내마음이지!'하면 기분이 확 나빠졌던 기억때문일까. 사실 그렇게 솔직한 사유가 또 없는데도.


'니 마음만 있냐? 내 마음도 있다!'라고 되받아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서로 눈물을 짜면서 그냥 눈을 흘기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냥 마음이 그렇다는데.


고민을 할 때는 머리와 마음이 싸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머리가 시키는 선택을 했고 늘 마음은 져주었다. 내 마음이 이유가 되는 인생은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러니 세상의 상식이나 이상적인 기준에 따를 뿐 나만의 가치판단 기준이 없던 거다. 지금이나마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나하나 해보려고 한다. 내가 만족할 만한 결과만 내면 누가 뭐란들 그게 무슨 소용일까. 한 번이라도 마음이 성공한 사례를 만들어보면 그 때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냥, 내 마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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