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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Dec 16. 2021

(11. 배달의 민족) 어쩐지 내 사랑은 쉽게 식어요

사랑에도 정해진 방식과 속도가 있을까?


배달의 민족


어쩐지 내 사랑은 쉽게 식어요

-

플라스틱 외관은 중요치 않아

우린 내면에 통하는 게 있다고

-

그저 당신이 말한 그대로

당신이 시키는 대로

-

그래, 마음의 모든 재료를 모아

가장 뜨거운 순간을 보낼게

-

이런 식으로도 전해진다고?

-

사랑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단다

믿을 수 없으면 관둬

-

사랑이 고픈 나는

얼굴도 모르는 채 마음을 맡기고

-

방향이 한쪽으로만 나 있는 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나?

-

삭막한 마음에

온기만 전해진다면야

-

도심의 바람을 가르고

분주히 전해지는 열병들

-

그럼에도 굳건히

한 순간도 진심이 아니었던 때가

없었음을



연애고자 혹은 인스턴트 연애를 생각하며 쓴 글이지만 나의 연애관으로 에세이를 덧붙여보겠다.


연인의 만남에도 정형화된 방식이 있을까? 지인에서 연인으로, 소개팅으로 성사되는 경우가 제일 흔할 테지만 '자만추'가 유행어인 걸 보면 예측하지 못한 만남에 대한 기대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다. 요즘에는 IT기술을 이용한 결혼중개 앱부터 간단한 데이팅 앱까지 생겼다. 독신주의가 늘어나고 있어도 길든 짧든 함께할 짝꿍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 듯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참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들을 한다. 나처럼 어린 시절 만나 오랫동안 연애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1~2년 주기로 애인이 바뀌는 사람, 애인도 썸도 아닌 관계만을 즐기는 사람, 아예 이성이라면 우습게 여기고 하루 이틀 놀고 마는 사람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놀라는 것이 내가 나이를 먹어선지 세상이 바뀌어선지 헷갈릴 때가 있다. 예전엔 사고 쳐서 결혼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큰 죄를 짓는 건 줄 알았는데 이제는 그게 보통의 일인 것 같다. 예전만큼 남녀 사이의 진도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사람도 적고, 초등학생들의 연애 고민이 인터넷에 쏟아진다. 아무리 내가 나이를 먹었어도 세상이 바뀐 건 틀림없겠다.


내가 열다섯 일 때쯤에는 랜덤채팅이 유행했다. 흰 바탕의 홈페이지에서 랜덤으로 1:1 채팅을 매칭 시켜줬다. 그때 알게 된 오빠가 있었는데, 관심사도 비슷하고 말도 잘 통했다. 우리는 시간을 정하고 몇 번이나 그 채팅창에서 만났다. 닉네임도 (익명)으로 표기되고 사진도 한 장 없었다. 누군가 잠들거나 컴퓨터를 끄면 매칭 된 채팅창이 사라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핸드폰 번호를 교환하고 사진을 주고받았다. 처음엔 너무 잘생겨서 믿을 수 있나 싶었다. 이름도, 사진도 꼭 운명 같았던 그가 내가 온라인을 통해 처음으로 맺은 이성과의 인연이다. 그 분과는 20대 초반까지 연락하다가 현재는 가끔 카톡 프로필 사진을 확인하는 사이로 남아있다.

정상인을 만나기 힘들었던 채팅사이트 '가가라이브'


그때 우리들은 주로 아는 남자애들이나 지인을 통해 문친(문자친구)을 구해서 썸을 즐기곤 했는데, 친구들이 이 오빠는 어느 학교에 다니는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적당히 둘러댔다. 그때는 온라인상으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었다.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인식도 더 많을 때였고, 무엇보다 사춘기 시절이라 놀림받을 거라는 생각이 컸다. 그래도 나는 그런 방식이 좋았다.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도 모르는 채여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 수 있는 느낌이었다. 적어도 내가 만났던 그분은 그때 우리 또래 남자애들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문자 속에 좀 더 깊은 메시지를 적었다.


나는 이 기억이 자랑스러운 90년대생(?)의 추억 속 한 페이지로 남을 줄 알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대를 함께 겪은 세대로서 한 번쯤 경험해볼 만한 일. 그러나 내 인연 선정의 방식은 꽤나 확고했나 보다. 20대 초중반에는 소개팅으로, 아르바이트하다가 만난, 도서관에서 번호를 물어본 남자들과 그저 허기(?)를 달래기 위해 연애를 해봤는데, 영 재미가 없었다. 겨우 몇 개월 만나고는 흥미가 바닥까지 떨어지는 식이었다. 재미 삼아 맞춘 커플링은 얼른 종로 3가로 달려가 반값에 팔고 친구와 피자를 사 먹었다.


그렇게 재미없는 연애를 이어가던 중 즐겨하던 게임 속에 눈에 띄는 캐릭터가 있었다. 분명 똑똑해 보이는데 장난기가 많았고 일개 길드장인 나에게 깍듯이 대하며 내가 야근을 하는 날에는 밤을 새우며 기다렸다가 자곤 했다. 자꾸만 이상한 농담을 하는데 계속 현실 웃음이 났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웃겼다. 종국엔 새벽 3시까지 야근을 한 날에도 해가 뜰 때까지 그와 게임을 하다가 출근하기도 했다. 그가 7년을 만난, 지금 내 남자 친구다.


지금은 서버 종료해버린 넥슨의 큐플레이


어쩌면 인연을 만나는 방식은 개개인마다 정해져 있지 않을까? 요새는 수십 번 소개팅을 해도 마음이 안 간다는 친구에게 게임을 해보라고 농담처럼 얘기한다. 물론 나는 게임을 워낙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 친구에게는 정답이 아니겠지만, 다른 활로를 찾아보라는 의도로.

7주년을 앞두고 게임덕후 컨셉으로 찍은 셀프사진


남자 친구와 퇴근하는 버스에서 김이나의 ''이나 할까를 킬킬대며 보곤 한다. 마주 보고 얘기하면 표정이나 감정표현이  쉬울진 몰라도, 오직 글로만 표현할 때의  묘미가 있다.  감정과 기분과 생각을 오로지 활자 안에 넣어야 하기에   생각이 깊어지고 정확한 단어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넷카마, 키보드워리어, 채팅 중독자라 불릴까 내심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도 했지만 이제 당당히 말할  있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라고. 남의 눈엔 한없이 가볍고 쉽게 보여도 나에게는 가장 한 사람을 잘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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