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마추어리 Nov 27. 2021

(08. 젊은 바보들) 사랑, 그 대책 없음에 대하여

쉽사리 미래를 그리기 어려운 젊은 커플들에게


젊은 바보들


눈이 네 개나 되는데

왜 둘이 걷는 길은

한 치 앞도 안 보여


먼 눈으로

갈길이 먼

길 잃은 사랑들


서로를 가린 채

더듬고 꿈꾸며

어디로든 가는

젊은 바보들



대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지금의 남자 친구와 교제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치러진 졸업식날, 대구에 있는 회사 합격 전화를 받았다. 장거리 연애에 지쳐 에라 모르겠다 하고 지원한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회사생활을 했다. 그리고 남자 친구와 매일매일 만날  있었다. 누가 뭐래도 행복했다.


일 년 반쯤 지났을까, 다시 서울로 가고 싶어졌다. 나의 무모한 결정을 걱정하던 친구들은 하나둘 유명한 강남 소재의 회사에 취업하기 시작했다. 남자 친구와 쏘다니던 동성로와 김광석길, 들안길의 신선함은 사라지고, 복잡하지만 자유로운 서울의 도심이 그리워졌다.


대구에서 태어나 평생을 감삼동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남자 친구를 설득해 서울로 올라왔다. 역마살이 꼈는지 어느 지역이든 쏘다니던 나에게는 별 일 아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에게는 자신이 살던 세계를 깨는 도전이었을 것이다.


LH의 도움을 받아 구한 투룸 전셋집에서 자던 첫날밤이었다. 각자 집에서 박스로 꾸려 부친 택배는 도착하지 않았고, 전에 살던 학생이 두고 간 하얀색 퀸 사이즈 매트리스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 낯설고 휑한 풍경은 마치 우리의 앞날을 보는 것 같았다. 둘 다 그리 나쁘지 않던 직장을 관두고 겁도 없이 손을 잡고 동거를 시작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어쩐지 그날은 생각처럼 설레지도 않고, 그저 텅 빈 방에 앉아 둘 다 어리둥절한 태도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는 통유리 오피스텔에서 3일 동안 대형 감자깡만 먹으며 버텼던 첫 상경 날에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는데. 그때는 대학교 생활을 앞두고 젊어서 그랬던 건가. 며칠간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그러고 얼마 뒤였던가.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가 우리 커플에게 오랜만에 한강에 가지 않겠냐고 했다. 대구 촌놈인 남자 친구에게 63 빌딩을 보여주기 위해 장소는 여의도로 정했다. 나는 63 빌딩을 구경하는 남자 친구의 뒷모습을 찍었고, 친구는 그 모습을 찍는 나를 찍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친구가 그날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줬다. 그중 눈에 띄는 사진이 있었다. 쌀쌀한 날씨에 나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남자 친구는 더벅머리를 한강 바람에 휘날리며 둘이 강을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실 강이라고 하기에는 시선이 너무 정면이긴 했다. 어쨌든 하늘도 강도 아닌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혼자서 뭔가를 결정하고 실행할 땐 스스로 뿌듯하기도 하고 용감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둘이 되니 달랐다.  '함께' 헤쳐가야 한다고 하니 2배는커녕 몇 배로 막막해졌다. 한 명을 더 먹여 살리고 말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제3의 문제에 부닥친 느낌이었다. 눈이 네 개가 됐는데, 오히려 한 치 앞도 안보였다.


이래서 콩깍지라는 말이 생긴 건가. 눈에 뵈는 게 없다는 말이 이런 데서 나온 건가. 사랑과 관련해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들을 찾아봤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이건 사랑에 관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취업) 가난이나 (동거에 대한) 사회적 시선 때문이었겠지.


서울에 올라온 지 5년 차, 우리는 이제 각자 안정적인 회사에 다니고 연봉도 많이 올렸다. 결사반대를 외치던 아빠는 이제 얼른 결혼하라고 재촉한다. 재계약을 두 번이나 한 집엔 물건이 너무 많아 주말마다 베란다 정리를 하느라 바쁘다.


스케치북에 예쁜 그림을 다 그렸으면 감상만 하지 말고 다음 장으로 넘겨야 한다. 다시 마주한 백지에 새로운 드로잉을 하고 색을 하나씩 채워나가야 '그다음'이 만들어진다.


삶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야 하는 건 슬프지만 당연한 일이다. 이제 나는 청년 주택 청약을 알아보며 부동산이라는 또 다른 막막함을 마주했다. 운도 따라줘야겠지만 멀어도 내후년쯤에는 어떻게든 마련한 신혼집을 또다시 꾸며나갈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매일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반복되는 막막함이라도 이제는 짝꿍의 손을 잡고 까만 밤을 버티는 법을 알게 된 것만 같다.

작가의 이전글 (02. 바람의 바람) 뭐든 될 수 있다면 사랑이 되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