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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Jan 23. 2022

[노인과 바다] 삶의 반경을 정하는 일

당신의 발 끝은 어디를 향해 있나요

노인과 바다


오늘도 빈 손이다

허기진 배가 힘없이 항구로 향한다


뱃머리가 바다의 배를 가른다

하얗게 피다 마는 물살이 애꿏다


닻줄을 잡는다

너울에 배가 적당히 흔들린다


고개 넘어 보이는 파란(波瀾)

그 너머엔 한없는 기억이 있는데


노인은 그대로 닻을 묶었다

그 삶을 매어 두었다




자기소개를 해야 할 때면 자주 '후천적 집순이'라는 말을 쓰곤 한다. 공황장애를 겪기 전, 한창 대학생 시절에는 MBTI도 ENFP였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하러 전국을 쏘다니곤 했다. 서울 이곳저곳에서 혼자 돌아다니며 알바도 쇼핑도 하고, 주말이면 기차를 타고 본가에 가거나 타 지역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 시절의 경험들을 생각하면 꿈같기도 하다가 그 호기로움이 그리워 슬퍼지기도 한다. 그래도 어렸을 때 많은 추억을 쌓아놔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공황장애를 겪고 새가슴이 된 후로는 삶의 반경이 갈수록 좁아졌다. 회사 업무차 다른 지역에 갈 때면 약을 한 움큼 삼키고 며칠 전부터 잠을 설치고, 회사를 제외하고는 집에서 멀어질수록 불안했다. 사실 반은 자의적이었다. MBTI도 INFJ로 바뀌었다. 내가 불편감을 느낄 법한 일들은 모두 사전에 차단했다.


웬만한 일은 모두 동 단위의 동네 안에서 해결하고, 꼭 필요하지 않은 약속은 잡지 않았다. 좁히고 좁힐수록 더 좁힐 것들은 없는지 궁리했다. 처음엔 서울까지는.. 이라며 지역의 한계를 두었다가, 그다음엔 강을 안 건너게 되고, 그다음엔 특정 지역은 피하게 되더니 이젠 어느 장소라도 고층 높이는 안 가려는 습성까지 생겼다.


고층 건물에 미팅을 가기 전날, 자기 전에 누워 곰곰이 생각했다. 분명 작년에는 호캉스랍시고 한강뷰가 보이는 25층 객실에서 숙박을 하고 꼭대기층에서 와인도 마셨는데? 전에 살던 집들도 한참 동안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야 했는데? 문제는 대상이 아니라 습관의 문제였다. 공황이라는 실체 없는 공포의 순간이 두려워서 나는 자꾸만 '눈에 보이며 내가 절제할 수 있는 적폐의 대상'을 설정하고 있었다. 뭐라도 한 가지를 지정해서 그것만 피해 다니면 나머지는 다 괜찮을 거야, 라면서 방패를 만들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어쩜  말은 나이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닌 듯하다. 얼마 전엔 문소리와 나를 비교한 짤을 보았다.  새벽에 사진 저장을 누르고 얼마나 한참을 웃었던지. 매스컴 속의 이야기지만(매스컴이라는 말이  이리 촌스리 느껴지는지, 세상 변화가 정말 징그럽게 빠르다) 요새는 젊은 사람들의 무기력함이   듯하다. 혹은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공격적인 마케팅이 너무 많은 걸지도.


새벽 중의 격한 공감을 이끌어낸 강력한 짤방


비슷한 삶의 태도를 가진 친구가 있다. 대학생 때 국문과 복수전공을 시작한 나에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최종적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그렇다고 독서를 놓진 않았다. 그게.. 어쨌든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알 수 없는 순환고리가 있었던 것 같다). 아는 게,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 삶은 우리가 그리는 평화롭고 따뜻한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어서 우리는 '예술과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라는 수업도 함께 들었다. 이런 수업도 들었었나? 싶다가도, '인간은 조급함 때문에 망해버렸다'라고 표현한 교수를 단번에 떠올렸다. 미대가 유명한 우리 학교에서도 특히나 예술학과는 특히나 유별난 과였는데, 어떤 수업을 듣던 그 학과 학생들은 맨 앞에 앉아 기계처럼 노트북을 두드렸다. 교수님의 얼굴을 보긴 하는 건지 몰랐다. 속기사라도 따야 들어갈 수 있는 과인듯 교수님의 말을 기계처럼 타이핑했다. 그렇게나 발전하고 기계화된 세상에서, 본인도 기껏해야 마흔 정도 되어 보이는 젊고 건강한 교수가 이미 '망해버렸다'라고 표현했는지 그때는 의문스러웠다. 어떤 걸 설명하는 대목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지금의 나 또한 이미 어느 부분은 망가진 채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라는 시처럼 망하면 망한 대로 그냥 사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감히 자부할 수 있다. 카카오톡에 두고두고 저장해 두고 읽었던 시.


지금 우리는 아마도 조로(早老)의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겠니, 30대가 된 지금 나는 친구에게 말을 건다. 그녀도 'ㅇㅇ'이라고 답한다. 퇴사에 성공한다면 더 큰 빌딩의 이직처보다는 요양원에 가고 싶다. 명성을 떨치기보다는 구설수를 피하고 싶다. 비겁자나 도망자는 아니다. 긍정적이지 못하지만 비관적인 것도 아니다. 그저 현상유지가 최고의 덕목일 뿐이다. 그냥 적당히 흔들리고 적당히 '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럼에도 해소되지 않은 갑갑함이 있는지 오늘은 뿌리 염색을 하러 미용실에 들렀다가 충동적으로 샛노랗게 머리를 탈색하고 왔다. 돌아오는 월요일 주간회의에서 상사들의 반응이 어떨지는 그려지지도 않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삶의 반경은 내가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만 움직일 수 있도록 컨트롤하고, 그 안에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일탈을 하고 살아야지.


다른 사람의 삶에 모험과 인내를 권유하는 건 미덕이 아니다.

그렇다고, 완벽한 삶을 살 수 없으니 포기해버리는 것도 내 삶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예전만큼 진취적이고 버라이어티한 일상은 아니어도 소소한 즐거움 정도는 누리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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