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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Feb 06. 2022

(21. 전당포) 당신은 왜 브런치에 글을 쓰나요?

순수문학 지향? 상업적 글쓰기? 브런치 발행의 목적에 관해 생각하다

전당포


일기를 받는 전당포가 있대


오늘 날씨에 기분이 어땠는지

기억에 남을 식사를 했는지

잠들기 전엔 어떤 결심을 했는지


이런 하루는 과연 쓸만한지


계산기를 아주 천천히 두드리고

한 번도 이득을 본 적 없는

주인이 말한대


이 하루의 쓸모는

찾으러 오거든 알려주겠소


이것을 까맣게 잊고 살지

어떤 일로 다시 찾게 될지

지금은 알 수 없다오


그러나 조급해마시오


당신이 쓸만한 것인지

생각하는 이 하루는

이미 이렇게 쓰여진 채로

소중히 보관될 테니




세상엔 다양한 글이 있다. 나는 주로 시를 쓴다. 원래는 시요일처럼 주류 작품을 감상하고 일반인끼리 작품을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사용했다. 블로그처럼 꾸준히 써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었고, 그저 떠오를 때마다 적어두면 작품이 하나씩 쌓였다. 일기나 감상적인 글과는 달리 시는 규칙적으로 쓰기가 어려웠다. 시상이 떠오를 만한 하루를 살고, 그걸 며칠간 나의 시선으로 곱씹어야 의미 있는 글이 나온다.


요즘에는 다행히(?)도 시상이 떠오르지 않는 일상을 살고 있다. 대부분의 것에 체념하고 만족하며 산다는 말이다. 나는 대체로 삶이 불편하거나 어떤 예민해지는 지점이 생기면 그걸 시의 소재로 삼는다. 그러니까 정직한 브런치 발행인은 못되어도 정신적으로는 꽤나 평온한 상태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브런치에 올릴 소재가 없다는 것은 꽤나 아쉬운 일이 되었다. 그렇다고 영혼도 없는 시를 지어 작품이랍시고 올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해서 '글이 쓰일 만한 하루를 살아야 하는데'라는 고민이 있었는데, 이런 와중에 브런치의 새로운 공지글을 보게 됐다. 클래스 101과 함께 하는 AI 클래스 프로젝트였다. 기술적인 가르침이나 강의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젝트이기에 나와는 상관없는 분야였다. 여기서 한 번 더 맥이 빠졌다. 과연 내 글은 쓸모 있는 글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편안한 시요일 플랫폼에서 나와 브런치 글을 적기 시작한 이유는 내 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함이었다. 폐쇄적인 어플 내에 작품을 쌓아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나누고 종래에는 책도 출간해서 세간의 관심을 받고 싶었다. 다만 실용적 글쓰기가 중시되고, 결국 자본이 움직이는 출판 시장에 고작 시 몇 편을 써서 올리는 것은 그들의 눈에 매력적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를 한 편 올리고, 기억을 더듬어 이 시를 쓴 계기와 감상을 내려 적었다.


나는 이런 구성의 책을 사서 읽어본 적은 없지만 꽤나 번거로운 기획이었다. 애초에 예견한 모순이기도 했다. 시의 아름다움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함축하는 맛이다. 더불어 나는 내 시를 읽는 이가 자신의 얘기라 느낄 정도로 최대한 몰입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에세이란 이름으로 나의 사연을 적어 내려가면 그 맛이 사라진다. 더불어 대중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쓰는 개인적인 감상은 굳이 브런치에 소개하지 않고 일기장이나 블로그에 비공개로 적어도 될 일이다. 요새는 독자를 신경 쓰지 않고 적는 감상글을 가장 견제하는 중이다. 사실 새벽에 발행을 했다가 다음날 바로 취소한 글이 몇 개 된다.


어젯밤에는 '쓸만한 글을 쓰고 싶은데, 도무지 글을  만한 하루를 보내지 않았다' 죄책감을 머릿속에서 되뇌며 어떻게든 시를 썼다. 그리고 글쓰기의 목적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는 그래도 괜찮다고 나를 위로하기로 했다. 돌이켜보니 욕심이 컸다. 시는 쓰고 싶고, 그러면서 대중의 관심은 받고 싶고. 깊은 경험이 담긴 작품은 쓰고 싶은데 발행은 정기적으로 하고 싶고. 절레절레, 시와 에세이의 만남만큼이나 애초부터  맞는 일이다.


그럼에도 노트북 앞에 앉아서   편의 글을 발행한다. 신춘 문예지에 실릴 시는 아닐 지라도, 상업적으로 가치 있는 에세이는 아닐 지라도 이게  스타일이니까. 그리고 나의 (브런치)글쓰기의 목적도 다시 설정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시를 읽으세요, 어려운  싫으면 아래 글만 읽고요." 마인드. 다만 발행주기가 조금 길더라도 "이런 글을 쓰는 사람도 있어요"라고 브런치와 출판시장에 언젠간  의미를 주고 싶다.


담벼락이 무너지고 수도관이 꽝꽝 얼어도 거듭거듭 고쳐 살고 싶은 게 삶이라던 것처럼.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꼭꼭 씹어 소화시키는 게 삶이라던 것처럼. 내 일기가 시 같아서 좋다던 옛 친구들의 칭찬을 몇 번이고 떠올리며 오늘도 시와 글을 꽁꽁 묶어 이곳에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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