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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Mar 14. 2022

[젖은 성냥갑] 언젠간 갓생 살고 만다

내 나이 서른 하나, 아직도 한타를 노리는 중

젖은 성냥갑


서른 개가 든 성냥갑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젖었다


우는 게

삶의 이유는 아니라서


아직 불을 붙이고 싶은

젖은 성냥개비


"이상하지 내가 한번 젖어보니 말이야

대가리는 더 뜨거운 색이 되고

막대는 굳은 심지처럼 변했고"


서해에 누워 부유하는

몽상가처럼 생각한다


이 슬픔이 마르면

시원하게 긁어낼

자기 발화의 순간을


단 한순간의 마찰로

세상에 불씨를 던질 한 때를



인생은 한 타다(?). 수험생 땐 대학이 인생을 바꿀 줄 알았다. 대학생 땐 뭣도 모르고 매달리던 토익점수가 인생의 점수인 줄 알았고, 취준생이 되고서는 자연스레 기업 순위를 알아봤다. 1000대 기업은 무슨, 잡플래닛에서야 겨우 찾을 수 있는 중소 대행사를 다니고 나서야 인생의 한타는 숙제처럼 던져진 삶의 길에 있지 않음을 알게 됐다. 답은 로또다!


출근길에 오천 원, 퇴근길에 만원. 가끔은 금요일 점심시간에 종종걸음으로 로또방을 다녀오기도 했다. 자동은 재미없어서 사인펜으로 칠해보기도 하고, 꿈에 나온 숫자 몇 개를 추려서 억지로 짜 맞춰보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 봤자 운 좋은 날에나 도로 오천 원 당첨이다. 에이, 이제 로또도 돈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어라, 근데 주변인들 핸드폰 창이 수상하다. 여기저기 물어 다음 답을 알아냈다. 답은 주식이구나!


주식도 폭삭 망했다. 이미 삼성전자 붐이 일고 지나가 코스피가 하락장에 들어서던 때였다. 비트코인은 무섭고 NFT는 머리가 안 따라준다. 아, 그나마 지겨운 삶을 버티게 해주는 한타라는 희망의 씨앗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취미 겸 자기 계발로 했던 여러 가지를 들춰본다. 대개 재미로 하다 만 것이고, 나머지는 게임과 게임과 게임이다.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캐릭터 꾸미기에 과금하는 일은 일상이고, 심지어 과금으로 룩덕질할 수 있는 게임을 검색해서 일단 지르고 시작하기도 했다.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 갑갑한 마음으로 사파리 브라우저를 이리저리 넘기던 어느 출근길, 콜로소 일러스트 광고가 떴다. 아, 내가 진짜 좋아하는 그림이잖아? 관심 있던 분야를 전문적으로 배우다 보면 제2까지는 아니더라도 제5의 직업쯤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얼리버드 특가로 덜컥 질러버렸다(사실 강의료는 새발의 피. 어도비 월 구독과 판 타블렛, usb허브까지 질렀다. 노트북은 한 달 전에 바꿨다...).


떠듬떠듬 따라 그린 하렌 포트레이트 일러스트. 강의도 반만 듣고는 성질이 급해 무작정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미완의 작품이지만 그날그날 진도가 나간 데까지 인스타그램에 변천사를 올리고나면 그렇게 뿌듯할  없다. 뭐라도 나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딱 만족할 만큼 그림을 그리니 기분이 좋아진다. 신나서 노래를 부르며 침대로 점프한다. 문득 내 발성과 고음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노래방에서 100점을 받았던 순간들이 기억을 스친다. 나, 알고보면 꽤나 재능충일수도?라는 행복회로를 돌린다.


평소라면 출근 생각에 침대 위에 축 쳐져 있을 나이건만, 생소한 걸 배우고 새로운 꿈을 꿔보니 몸을 무겁게 적시던 물기가 싹 가시는 기분이다. 반복되는 노동에 축축했던 정신도 조금 가다듬어본다. 그리고 야밤에 혼자서 야심 차게 노려본다. 그림이든 노래든 언젠가 각성해서 이 무료한 일상을 박차고 나갈 한 때를. 사실 내가 힘숨찐이었다!하고 외치며 새로운 세상으로 치고 나갈 한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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