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마추어리 Sep 24. 2022

[퇴근하던 날] 질서 없는 날들의 가운데서

일과 삶의 경계가 해수면인 듯 허우적거리며 효율이라는 부표를 찾는 중

퇴근하던 날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는 날이 있었다 정확히는 보통의 것들이 도무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일이 연속으로 일어났던 날이 있었다

     

화가 나는 일이 있었다 팔뚝을 부르르 떨었다 예민한 하루였다 바람은 어이없이 신선했다 하늘엔 밝은 달이 떠 있었다     


꽃집엔 아무도 없었다 자판기는 돈을 먹었고 나는 제 값을 받기 위해 사정했다 작은 기분전환조차 허락되지 않은 날이 있었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기분에 얽매이면 작은 행운도 따라오지 않지 맘대로 되는 세상은 없다 일에서 해방된 오후 일곱 시 비관적이기엔 도무지 비효율적인 생체리듬이다     


즐거워져야지




월요일에 2억짜리 행사가 있으면 대행사와 대대행사와 외주 제작사와 개발사는 지옥 같은 주말을 보낸다. 이번 금요일도 새벽 두 시까지 전화를 받았다. 내일은 출근, 오늘은 노트북 앞 상시 대기 인력이다. 메일함을 띄워놓고 멍하니 있다가 시 모음집을 열어봤다. 어느 퇴근길에 쓴 시가 눈에 띈다. 저 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 자판기에 적힌 핸드폰 번호의 주인이 내 또래의 젊은 남자였다는 건 기억이 나는데. 그나저나 날씨가 좋은 일곱 시라, 저 날은 실은 축복받은 날이 아니었을까.


언제나 시는 정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사고 읽는 요즘 시는 조금 달랐다. 어떤 것은 그냥 산문의 형식을 띄기도 했고, 어떤 것은 술 취한 어린아이가 어렵게 어렵게 써낸 문장 같은 것들이 쓰여 있었다. 시를 좋아한다면서도 좋아하는 시인을 물으면 '음.. 나태주 시가 좋던데'라고 대답한다. 어렵고 트렌디한 글을 쓰는 시인들의 이름은 지인의 지인처럼 알듯 말듯 생소했다.


그래, 그런 시도 그런 시인도 있는데 '퇴근하던 날'이 오늘 최고의 시가 못될 이유가 뭐가 있으랴. 지금 이 순간에도 국어국문학과를 막 졸업한듯한 어린 클라이언트가 또랑또랑한 말투를 메일에 그대로 담아 수정사항을 보내오는데. 이건 일본어식 표현이고요, 오천 원 권에서 원권은 모두 붙여주세요. 바뀌는 글자는 화면에 3초간 띄워질 예정이고, 수정에 수정을 거치면서 드는 영상 렌더링 시간은 3시간을 넘어설 지경이다. 이쯤 되면 누가 잘못인 걸까. 전공을 살려 반짝이는 눈으로 제 몫을 해나가는 그녀일까. 일과 삶의 경계가 해수면인 듯 허우적거리며 효율이라는 부표를 찾는 나일까.


일도 시처럼 정갈하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일정은 논의한 대로, 용건은 간단하게, 서로 예산이라는 선을 넘지 않으며. 인간 대 인간 말고 비즈니스적으로. 가끔 보내는 ^^ 정도는 괜찮지만 ㅠㅠ와 ㅎㅎ를 쓸 일은 만들지 않고. 근데 일에도 취향이라는 게 있는지 영 습관이 맞지 않는 파트너를 만나면 괴롭다. 마음먹을 때마다 바뀌는 지시와, 앞뒤가 맞지 않는 카톡과, 먼저 통화에서는 농담이 섞였다가 이번 통화에서는 목소리에서 찬바람이 쌩 하고 느껴질 때 나는 이 사람이 아주 낯선 시인처럼 느껴진다. 당신은 세련되었고 나는 모르는 유려한 표현방법을 쓰는군요. 단순한 걸 좋아하는 제게는 조금 어려운 유형이군요. 책이었다면 덮어버렸을 텐데, 아쉽게도 현실이라서 밤늦게까지 눈꺼풀도 못 덮는군요. 퍽 난감하고 비극적인 상황인데. 아, 아무래도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닐지도.


가끔 나 자신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이렇게 일에 시달리니 지금은 행사일이 너무나 기다려진다. 와, 그 한 시간의 기념식만 끝나면 연락할 일이 70%는 줄어든단 말이야? 그리고 축제랑 이벤트만 끝나면 이 일에서 해방! 그때의 기분은 어떨까, 너무 신나서 고층 호텔 행사장에서 뛰어내릴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새벽까지 메일을 전달하고 카톡을 전달하면서 히죽히죽 웃는다.


시에는 매개체가 있다. 위 시에선 자판기가 그런 역할일 것이다. 나는 요즘 매개체다. 왼쪽엔 클라이언트와의 카톡창을 열어두고 오른쪽엔 제작사와의 카톡창을 열어둔다. 그리고 카톡의 80%는 거의 똑같이 받아서 적고종결어미만 '라고 합니다' 따위로 바꿔서 보낸다. 뭔가를 물어보면 똑같이 질문하고, 엉뚱한 답변이 오면... 똑같이 엉뚱하게 답변한다. 나는 매개체 중에서도 아마 모스부호가 아닐까? 모스부호인데 살아 있는 모스부호. 따닥 딱 딱. 키보드를 치면서 정보를 전달한다. 모스부호에는 성조나 세기의 개념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시발 시발 거리며 보내는 문자와 안도의 숨을 내뱉으며 보내는 문자는 소리부터 다르니까.


나는 에세이에도 기승전결이 있고 정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브런치 글을 쓸 때면 마지막 문단에는 오늘의 시와 위에 서술한 내용을 종합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만들기 위해 생각을 쥐어짠다. 성대한 행사를 위해 지긋지긋한 날들을 견디는 것처럼, 완벽한 영상을 위해 오탈자 2byte를 고치며 끊임없이 렌더링을 돌리는 것처럼 어떤 글을 읽는다는 건 그 서사에 담긴 정수를 만나기 위해 지난한 단락 단락들을 건너가는 일 아니었던가.


그런데 오늘은 그렇게까지 용을 쓰지 않으련다. 왜냐면 '퇴근하던 날'도 요즘 시라고 하면 요즘의 시고, 또 이렇게 꼬리에서 꼬리를 물고 몇 가지 얘기를 나열하다가 담배연기처럼 뿌옇게 흩어지면서 끝나는 글들이 트렌드라고 하니까. 그리고 일이라던가 몇 가지 상황들이 마치 너만 그렇게 결벽적으로 사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온통 질서를 어기는 날들의 한가운데서 한숨 쉬듯 간만의 작문을 끝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아담의 이브화] 하마터면 일류 소설가 될 뻔했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