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나, 가짜 집, 익숙한 우울감

감정 알아차림2/2<2022.5.3>(with 교육분석)

by 세만월

투사적 기법 수업 시간에 로샤 검사 해석 과제를 앞두면서, 상담 수련에 들어가며 첫 사례를 맡으면서, 그리고 3학기가 끝나면 곧 논문학기가 찾아온다는 것을 느끼면서 미루는 것이 시작됐다. 미루는 행동을 하기 직전에는 회사에서의 어린 팀원들과의 관계에서 신경을 쓰게 되면서 피곤하고 집에 돌아오면 진이 빠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마주하며 나의 보기 싫은 단점들을 보게 되어 또한 찜찜하고 괴로웠다.


몸이 피곤해서였을까. 내가 해야 하는 과제들을 미루면서 생기는 불안과 초조함으로 더욱 미루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 버리고 자 버리고를 반복하면서 시간만 흘려보냈다. 그것이 며칠 반복되자 불안과 초조함은 우울감으로 찾아왔다.


그러던 와중, 새벽에 카카오톡 프로필 추천 음악 목록에서 예전 대학원 시절 깊은 우울감으로 허우적대던 시기, 자주 들었던 음악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프로필 음악으로 설정하고, 또 추천 목록을 보는데 역시 대학원 시절 자주 들었던 또 다른 음악 한 곡이 보였다. 그것도 프로필 음악에 설정했다. 그러고 나서 아침 늦게 눈을 뜨고서는 바로 이어폰을 꽂고 모자를 눌러쓰고 산책길로 나섰다. 음악을 들으며 하염없이 산책길을 왔다 갔다를 수없이 반복했고, 그렇게 4시간이나 걸었다. 터벅터벅 천천히.



그렇게 예전에 즐겼던 음악을 들으며 걷는데, ‘어, 이거 익숙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교육분석 때 '진짜 나'를 찾아야 하는데, 우울했던 시기의 익숙함이 몸에 오래 젖어 있어서 그것에 자꾸 찾아들어가려고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울감을 느꼈던 것이고, 지금은 상황적으로 많이 달라졌음에도 예전 그 모습이 자기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가짜 나'를 '진짜 자기'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였다.



대학원 시절, 우울한 음악을 들으며 하루 종일 정처 없이 하염없이 걸었고, 2호선 순환 전철을 타고 하루 종일 돌기도 하고, 아무 버스나 타고 하루 종일 버스에 몸을 싣고 도로 위를 달린 적도 수없이 많았다. 그것으로도 안 되면 경포대행 버스를 잡아 타서 파도치는 것을 보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산책을 하기 며칠 전, 갑자기 내가 좋아하는 한 분을 끄집어내어 내 우울감 정중앙에 놓고, 우울한 음악을 들으며 그분과의 관계에서 행복한 순간을 꿈꾸지 못하는 우울한 생각과 함께 우울 모드로 세팅을 마치고 4시간을 걸었다. 걷다 보니 익숙함이 느껴졌고, 내 집인양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 이거구나!’ 싶었다. OOO을 좋아하지만,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로의 일을 열심히 하며 각자의 생활을 열심히 사는 관계에 대한 만족감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분이 활용되었다. 대학원 시절 짝사랑을 많이 했다. 우울감과 더해서 그들을 떠올리며 흠뻑 더 취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 그들을 짝사랑하느라 우울감을 느낀 것일 수도 있었겠지만 돌이켜 보면 나의 우울감을 대체할 대상이었을 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짜 나를 버리고, 진짜 집을 만들어야 한다. 몸이 익숙해진 기분과 감정으로 나아간다. 머리는 아닌데 가슴이 그런다.


진짜 집이 무엇인지, 진짜 나가 누구인지 맨땅에 놓인 느낌이다. 나와 같은 내담자가 앞에 있다 생각하고 상담을 한다고 하면 무슨 말을 해 주고 싶냐는 말에 아무런 멘트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엉엉 울었다. 눈물만 쏟아졌다.


우선은 미해결 된 현실적인 일들이 너무 많지만, 3학기를 잘 끝내는 것부터, 개인상담 슈퍼비전 준비부터, 축어록을 푸는 것부터, 하나하나씩 해나가기로 선생님과 약속했다. 여기서 더 감정으로 빠져들면 안 될 것 같다. 이혼 문제도, 집 문제도, 경제적 문제도, 대학원 논문 졸업도, 하나하나씩 해결되다 보면 꼬였던 실타래가 거의 풀릴 것이다. 거의 풀릴 때쯤엔 어디가 어떻게 꼬여 있는지가 훤히 보이듯이. 감정의 열쇠는 일주일 간 상담 선생님이 가지고 있겠다고 했다. 먼저 축어록부터 풀자.


그리고 어제 분석 상담을 마치고 그간 미루고만 있었던 개인상담 슈퍼비전 보고서 작업에 들어갔다. 축어록을 풀다 보니 새벽 4시가 되었고, 그러고 나서 잠자리에 드니 조금이나마 안도감과 뿌듯함이 들어왔다. 이전에 정신을 놓아 버리고 잠수를 타던 나는 아니다. '나는 할 수 있다'를 의지적으로 생각하며, 어느 때는 감정을 움켜 잡고 나 자신을 지켜내야 하는 때도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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