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격리되면서 자연스럽게 어린 두 명의 직장 동료와 떨어져 있게 되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그들에게 신경 쓰였던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고, 코로나로 격리되기 직전 있었던 상황들을 돌아보며 나에 대해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은 그렇다면 왜 편안해진 것일까?
이제는 다시 공적인 관계로 그들을 대할 수 있고, 그러한 관계 규정 안에서 내가 업무적으로 해야 할 말만 해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다.
그렇다면 그전엔 왜 불편했던 것일까?
말이 잘 통하는 한 친구(동료 A)에게 공사 관계가 얽히고설켜 사적으로 너무 많은 내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 중에 다른 친구(동료 B)에게 오랜 시간 참고 쌓아 두고 있었던 서운함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A에게 그 부분을 공감받기 시작하자 봇물 터지듯 나의 사적 감정과 생각들을 쏟아냈고, 한동안 그 시간들이 나를 휘몰아친 것같이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하지만 나이 차가 꽤 나고, 팀장의 직급으로서, A와의 깊이 있는 소통이 이뤄지던 동안에도 찜찜함이 있었다.
찜찜함은 B를 내리깔고 내가 위로 서면서 얻는 공감이라는 데서 왔다.결과적으로 나는 A에게 B의 험담을 했고, A가 동조해 주자 나는 그간 담아두고 있던 B에게 받았던 서운한 감정들을 모조리 다 이야기한 것이다.
그런데, 한 달 전 내가 두 번의 수술을 받는 시기에 마침 업무 데드라인이 맞물렸고, A에게 대신 총괄을 맡기게 되었다. 나는 그 친구를 믿었고, 나는 손을 놓았다. 놓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나 놔 버렸다. 그래서 A가 B를 이끌고 편집 일정을 마무리하는 데 1~2주 야근을 하며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러고 난 후 나는 복귀했다.
A는 팀장님(필자)을 항상 믿고 의지하며 항상 어른이라고 생각하며 존경하는 마음이 있고 사적으로는 ‘언니’ 같은 마음으로 좋아하지만, 이번에 팀장님이 손을 놔 버렸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이 힘들었다는 이야기였다.
A는 작년에 일신상의 이유로 9개월 간 지방으로 내려간 적이 있었고, 회사의 배려로, 그리고 상사에게는 나의 설득으로 그 친구가 그곳에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배려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A는 "자기는 타지에 있었지만 자기가 맡은 바 일은 다 했다, 그런데 이번 팀장님의 영향으로 실망감이 컸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사무실에 남겨져 있던 나와 B는 당시 대표님과 같은 사무실을 쓰는 데다가 우리가 맡고 있는 일 외에도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기에 둘이 처리하기엔 정신없었다. 회사의 이사도 있었기에 사무실에 남아 있는 둘이 준비를 다 해야만 했다. 그 부분에 대해 예전에도 A에게 이야기하며 회사에서 배려를 해 준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고, A도 감사한 마음이라며 감사카드를 써 가며 자주 표현했었다.
하지만, 지방에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다 했다는 말에 할 말이 없어졌다. 이 친구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맡은 일은 다 잘했으니깐. 하지만 사무실에 남아 있던 우리의 허둥지둥 대던 수많은 시간들이 A에게 보일 리 만무했다. '배려받았다는 생각을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였으면, 서로 의지하고 말이 잘 통하고 깊은 대화를 하며 사적 관계로도 오래 지속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눌 정도의 사이라면, 설사 팀장이 그렇게 정신 줄을 놓아 버렸어도 바로 실망했다는 이야기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상황이 정말 힘드니까 어쩔 수 없겠구나. 내가 힘이 되어 주어야겠다'라고 생각했을 것 같았다. 서운했다.
하지만 나의 잘못된 기대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모두 주관적이고, 자기의 편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100퍼센트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나는 그녀에게 배려해 줬다고 생각하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그것이 배려가 아닐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그녀에게서 그러고 나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공감을 해 주는 사람이어도 나의 상황을 100퍼센트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주관된 이기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B에 대해 A에게 욕했던 시간들이 B에게 미안하고 그런 내 모습이 보기 싫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그냥 두려고 한다. 그 마음을 어떻게 섣불리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고 내 행동에 대한 책임으로서 찜찜한 이 마음을 두려고 한다.
'봇물 터지는 것'이 중심 이슈가 되었다. 일에 있어서는 표현을 잘하는데, 관계에 있어서는 감정을 얘기하지 않고 참는다. 퇴사한 남자 직원의 괴롭힘에도 8년을 참아서 견뎠고, 그로 인해 오는 B에게서의 서운함과 그녀의 무능함에 대해서도 참았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형사입건이 가능하다고까지 말하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도 참았다. 참고 견디고 극복해 내고 이겨 내고, 마치 나 자신이 어디까지 참을 수 있나를 테스트하듯 내가 속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참다가 결국 몸이 아프거나 결국 극단의 상황을 맞이한다.
봇물이 터져 버리고, 거기서 공감받는다는 감정이 들면 확 빠져든다. 동성이건 이성이건 할 것 없이. 만약 A가 이성이었다면 문제가 되었을 수 있었던 상황이다. 아찔하다. 이 문제에 있어 더욱 탐색하려고 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내 심장에 울림으로 다가오는 순간을 마주할 때까지 반복해야 할 것 같다.